삼국지 영걸전
촉 나라
가나다라 순
간옹(簡壅)
..........촉(蜀)유비의 문관으로 각국을 사신으로 많이 왕래한 문사(文士)이다.
..........탁군사람으로 자는 헌화이며 관직은 종사낭중이었다.
강유(姜維)
..........촉(蜀)유비의 장수로 지용을 두루 겸비한 이로 원래는 위나라의 장수였지만 인물을 알아본 제갈량이 계략을 써 촉나라로 귀순하게 한 후 제갈량의 후계자로 임명된다.
..........벼슬은 대장군까지 지냈으며 훗날 후주인 유선(劉先)이 위나라로 항복한 후 위장 종회를 이용하여 촉의 부활을 꾀했으나 지병인 신경통으로 끝내 일을 이루지 못하여 자결하였음.
..........천수 사람으로 자는 백약임.
관우(關羽)
..........유비, 장비와 도원에서 결의한 의제로 황건적 토벌때 부터 수 많은 전적을 세웠으며 뛰어난 무공과 위엄으로 중원천지를 울리니 그를 따라갈 장수가 없었을 정도였다.
..........조조의 오관을 돌파하며 단신으로 육장(六將)을 참한일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촉의 오호장군(五虎將軍)중 으뜸으로 훗날 오(吳)의 여몽에게 붙잡히게 되어 손권이 회유하려했으나 의기를 끝까지 지키고 죽게된다.
..........하동 해량 사람으로 자는 운장이었음.
관평(關平)
..........관우가 유비를 찾으러 하북으로 갈때 얻은 양아들로써 스스로 무예를 통달하였다.
..........의부인 관우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싸움에서 무공을 세우니 관우가 친아들처럼 아꼈다.
..........훗날 오나라의 여몽에게 관우와 함께 붙잡히게 되고 관우의 부탁으로 손권이 놓아주려고 했지만 끝까지 아버지와 촉나라에 충의를 지켜 관우와 같이 죽으니 사람들이 신자(紳子)라 하였다.
..........하북사람으로 자는 호서였다.
관흥(關興)
..........관우의 친아들로 아버지를 닮아 무예에 뛰어났다.
..........관우가 죽은 뒤 유비와 제갈량을 따라 싸움터에서 수많은 전적을 올리고 명성을 떨치니 그의 용기와 무예, 충성심은 관우 못지 않았다.
..........성도에서 병사한다.
..........강하사람으로 자는 안국이었음.
등지(鄧芝)
..........유비의 문관으로 오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오·촉의 동맹을 굳게 다지는데 큰 공훈을 세우고 관직은 대장군이었다.
..........의양 신야사람으로 자는 백묘라 하였다.
..........현자 등후의 후예임.
마대(馬岱)
..........원래는 마등의 아들 마초의 종제로 낙양으로 간 마등이 조조의 계략에 빠져 죽은 뒤 마초와 조조의 복수전을 결심했으나 실패로 돌아가 마초와 함께 방랑생활을 하다 유비에게 충성을 다할것을 맹세하고 평생 제갈량의 휘하에서 뛰어난 공적을 쌓는다.
..........후에 제갈량의 유교를 받들어 촉을 배반한 위연을 진 앞에서 목베는 공훈을 세운다.
..........서량 사람으로 자는 공대.
마량(馬良)
..........유비에게 기용되어 관우가 죽기전까지 관우의 시중역할을 해준 문관이다.
..........유명한 고사인 백미(白尾)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동오와의 관계유지에 큰 역할을 했으며 남만 회유에 큰 공헌을 했다.
..........관직은 종사로 양양 사람으로 자는 계상이다.
마속(馬謖)
..........마량의 아우로 형과 역시 촉에 충성을 다했으며 제갈량이 특별히 아꼈던 자이기도 하다.
..........후에 사마의가 쳐들어오자 촉의 퇴군로인 가정을 맡았으나 사마의의 계략에 빠져 가정을 잃자 제갈량이 눈물을 머금고 목을 베었다.
..........양양사람으로 자는 유상이다.
마초(馬超)
..........서량의 호걸 마등의 첫째 아들.
..........유비의 아우 장비와 일대격전을 벌이니 천하가 울리고 땅이 진동할 정도였으며 무예는 장비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후에 유비에게 항복하여 촉의 서쪽 변방을 맡으니 강족들이 두려워 감히 촉을 넘보지 못했다고 한다.
..........촉의 오호장군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부풍의 무릉 사람으로 자는 맹기임.
마충(馬忠)
..........유비가 촉을 빼앗은 후에 얻은 장수로 남방에서 수 많은 공훈을 세우고 관직은 진남 대장군이였다.
..........파서 낭중 사람으로 자는 덕신임.
맹달(孟達)
..........촉(蜀)의 유장의 사람으로 있으면서 장송과 함께 유비에게 촉을 넘겨주는데 한몫했던 사람이다.
..........훗날 사지에 처해있는 관우를 구해주지 않은 죄가 두려워 위에 투항했고 제갈량이 기산으로 나와 장안을 넘볼때 다시 촉나라로 귀순하려 했지만 이미 거기까지 헤아린 사마의에 의해 죽게된다.
..........부풍사람으로 자는 자경이다.
미방(美芳)
..........미축의 아우로 여동생을 유비에게 시집보낸이후 미축과 함께 유비를 위해 일한다.
..........나중엔 관직이 남군태수까지 됐으나 관우를 도와주지않은 죄로 벌을 받을것이 두려워 오(吳)나라로 투항한다.
..........후에 유비가 오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공격하는 중 관우의 아들 관흥에게 목을 바치게 된다.
..........신야 사람으로 자는 중덕.
미축(美竺)
..........처음부터 유비를 섬겨온 구신으로 유비를 위해선 몸을 아끼지 않았던 문관이다.
..........벼슬이 한안장군에 이르렀으나 아우 미방이 동 오로 투항했다는 사실에 통분하고 부끄러운 나머지 울홧병으로 죽게된다.
..........동해구사람으로 자는 자중 시호는 충서이다.
방통(龐統)
..........일찍이 수경선생 사마휘가 남주지사의 첫째라고 칭했으며 봉추라고 불리우면서 제갈량과 같이 이름을 떨쳤다.
..........적벽대전에세 조조에게 연환계를 가르쳐주어 패하게 한 후 유비의 부군사로 임명되었지만 유장의 촉을 칠 때 매복궁에 의해 낙봉파에서 38세 나이에 목숨을 잃게 된다.
..........양양사람으로 자는 사원 시호는 정후임.
법정(法正)
..........현사 법진의 아들로써 술법과 지략을 겸비했으며 유비가 유장의 항복을 받아내는데 큰 공헌을 한다.
..........제갈량의 뒤를 항상 보좌하다가 제갈량이 죽자 통분한 나머지 죽게된다.
..........고향은 우부풍사람으로 자는 효직이고 시호는 익후라함.
부동(簿同)
..........유비의 직속 무장으로 평생 동안의 유비의 호위를 맡았음.
..........관우의 복수전에서 유비가 궁지에 몰리자 목숨을 걸고 유비를 조운이 있는 곳까지 모신 후 다시 적의 진으로 뛰어들어 분전하니 목 벤 장수만 다섯이 넘었다.
..........난군중 전사하였으며 유비가 삼일을 통곡했다고 한다.
..........별주마사로 임명되고 시호는 환영임.
부첨(簿僉)
..........무장으로 낮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과하게 여긴 청렴결백한 이로 제갈량이 무척이나 아꼈던 무장이다.
..........가장 중요한 촉의 목구멍인 양평관을 위나라의 공격에서 여러차례 지켜낸 무장이기도 하다.
..........신야 호려사람으로 자는 맹술임.
비시(備詩)
..........관직은 간이대부로 촉의 내정일을 맡았던 사람임.
..........남안 사람으로 자는 공고임.
비위(費緯)
..........여러차례 오나라로 사신으로 건너가 공훈을 세웠으며 장완다음으로 촉의 승상을 맡았던 현자이다.
..........강하 맹 사람으로 자는 문위이다.
서서(徐庶)
..........수경선생 사마휘의 소개를 받아 유비를 찾아가 스스로 모사가 되었다.
..........하후돈의 대군을 물리친다음 조조가 어머니를 인질로 필적을 흉내내어 서서를 불러들이자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하고 조조가 있는 장안으로 간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아들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자결하니 평생 몸은 위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촉에 있었다.
..........적벽대전에서 서량으로 간 후 알수없다.
..........영천사람으로 자는 원직임.
손건(孫乾)
..........미축과 함께 유비를 위해 일했던 구신이다.
..........유비를 위해선 사지라도 걸어들어갔던 충신으로 외교 수완에서 큰 공을 세웠다.
..........벼슬은 병충장군이었고 성도에서 병사하고 만다.
..........북해사람으로 자는 공우였음.
양의(楊儀)
..........제갈량을 따라 수차례에 걸쳐 군의 일을 처리하고 제갈량을 곁에서 돌보아 벼슬이 후군사에 이르렀으나 속이 좁은 탓에 관직에 불만을 품고 지내다 제갈량에게 들통이 나 서인으로 쫓겨나게된다.
..........후에 부끄러운 나머지 자살한다.
..........양양사람으로 자는 위공임.
양홍(楊洪)
..........관직이 촉군태수로 수차례에 걸쳐 외지에서 일을 잘 처리하니 그의 정평이 매우 높았다.
..........건위 무양사람으로 자는 계휴임.
엄안(嚴顔)
..........원래는 유장의 장수로 늙은 나이에 촉의 대장군을 맡았다.
..........훗날 유비를 도우러가는 장비의 계략에 걸려들어 잡히니 장비가 의로써 설득해 유비를 위해 일하게 된다.
..........성도에서 병사한다.
..........상용 무천 사람으로 자는 공덕임.
여개(呂凱)
..........촉의 운남태수로 제갈량의 평저한 오랑캐 지방으로 다스리다가 제갈량이 죽자 반란으로 일으킨 오랑캐에 의해 죽고만다.
..........영창 불위 사람으로 자는 계평임.
..........저서로 평만지남이 있음.
왕평(王平)
..........촉의 장수로 제갈량이 아꼈던 사람중에 하나였다.
..........제갈량을 따라 수차례 출정해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며 공훈을 세웠다.
..........점감군과 진북대장이란 시호를 얻었다.
..........파서 암거사람으로 자는 자균임.
요화(寥化)
..........원래는 황건적의 괴수였지만 훗날 화북으로 유비를 찾아가는 관우를 만나고 그의 인품에 반해 관우를 따라나선 사람이다.
..........관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관우를 위해 충성을 다해 일한다.
..........오의 여몽의 계략에 빠진 관우를 구하기위해 적군사이를 돌파하여 도움을 청하려했지만 미방, 맹달의 배반으로 뜻대로 되지 않자 성도의 유비에게 알려 도움을 청한다.
..........훗날 관우가 죽자 통분하여 분사한다.
..........유비가 가련하게 여겨 청민군이라는 시호를 내린다.
..........양양사람으로 자는 원검임
위연(魏延)
..........촉의 맹장.
..........원래는 유표의 장수였지만 유표가 몰락하자 다시 한현에게 가 관우가 한현에게 쳐들어 왔을때 그를 죽이고 유비에게 온다.
..........제갈량이 위연에겐 반역의 상인 반골이 있음을 알고 죽이려고 했지만 인재를 아까워 하는 유비가 말려 촉에 충성을 다해 싸우지만 제갈량이 말한대로 그가 죽은 뒤 반역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미 거기까지 헤아려둔 제갈량이 마대를 시켜 바로 자신의 진 앞에서 마대의 불의의 일격을 받아 죽게된다.
..........의양사람으로 자는 문장임.
유봉(劉鳳)
..........원래는 구봉이었지만 유비가 양자로 받아들임.
..........유비를 위해 충성을 다해 싸우고 공훈을 세우지만 후에 관우를 구하지 않은 죄로 참형을 당해 죽는다.
..........평원사람으로 자는 공산임.
유비(劉備)
..........탁현 누상촌 태생으로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으로 자는 현덕이었음.
..........귀인의 상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성격은 너그럽고 말이 적었으며 항상 말할때 미소를 띄웠음.
..........기쁘거나 화가나도 잘 얼굴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천하의 호걸들과 친교를 잘 맺었으며 식견이 높아 사람의 속을 잘 간파하였다.
..........도원에서 관우, 장비와 도원결의를 맺은 후 일생을 고전 분투하였으며 후에 제갈량을 삼고초려의 예로 맞아들이니 비로소 대업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유장에게서 촉의 기업을 찬탈한 뒤 조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제갈량의 권유에 따라 한의 체통을 세우기 위해 천자가 되고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를 치려다가 육손의 손에 모든 대군이 참패를 당하게 되고 성도로 가지 않고 백제성에서 머물다가 노쇠로 병사함.
..........촉의 선주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시호는 소혈황제임.
이엄(李嚴)
..........촉의 조정에 있을때 유비의 신임을 얻어 유비의 유언에 따라 제갈량을 따라 후주를 도왔으며 싸움터에서 적절한 계책을 진언하여 수 많은 공을 세우지만 사소한 일로 인하여 제갈량에 의해 북서인으로 쫓겨나게 된다.
..........후에 제갈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너무나 슬픈 나머지 통분하다가 등창이 터쳐 죽었음.
..........남양 사람으로 자는 정방임.
장비(張飛)
..........도원에서 유비, 관우와 함께 의를 맺은 형제이며 촉의 오호장군, 맹장임.
..........무예가 절륜하고 한자루의 장팔사모를 가지고 싸우니 조조와 장수들이 매우 두려워했다.
..........당양 장판벌에서 조운과 함께 이름을 떨쳤으며 호통 소리 한번으로 조조의 백만대군을 물리친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바람에 부하 장수에게 횡사당한다.
..........탁군으로 자는 익덕 시호는 환후임.
장완(將琬)
..........촉의 중진으로 제갈량이 출사한후에 내정을 맡아 식량과 군사를 담당했으며 제갈량이 죽자 승상이 되어 촉을 다스렸음.
..........영릉 상향사람으로 자는 공염임.
장익(張翼)
..........촉의 장군으로 군사를 잘 다스렸으며 지략에도 밝아 제갈량이 매우 아꼈던 인재중에 하나이다.
..........제갈량이 죽은 후에 대장군이 되어 위의 종회와 싸웠지만 궁지에 몰린 끝에 적의 진에 뛰어들어 분전하다가 죽었음.
..........건위 무양 사람으로 자는 백공임.
장포(張包)
..........촉의 맹장.
..........장비의 아들로 아버지를 따라 무예가 뛰어났음.
..........아버지의 유품인 장팔사모를 가지고 관흥과 함께 제갈량을 돕다가 제갈량이 출사했을때 난군중 절벽에서 떨어져 성도로 옮겨졌으나 죽고 말았음.
..........강하사람으로 자는 덕사임.
제갈량(諸葛亮)
..........한의 사례교위 제갈풍의 후손으로 세상의 어지러움을 알고 양양의 융중 언덕에서 동생과 함께 초가집을 짓고 농사나 하며 지내니 사람들이 와룡이라 불렀다.
..........유비가 세번이나 초당을 찾아가 군사가 되주길 부탁하여 비로소 세상에 나오니 키는 팔척이요 피부는 옥같았으며 윤건을 쓰고 우선을 드니 마치 신선 같았다.
..........사람이 충정하고 솔직 담백하며 고요했으며 천하를 뒤흔드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평생을 유비와 유선을 섬겨 대업의 기틀을 달성했으며 다시 안국의 선정을 베풀다가 여섯번이나 기산으로 나가 중원을 노렸으나 사마의의 방해로 중원을 얻지 못한채 오장원 군중에서 천명이 다하지 못하고 죽었음.
..........촉의 승상이며 무향후의 시호를 얻었음.
..........낭야 남양 사람으로 자는 공명임.
조운(趙雲)
..........촉의 오호장군인 동시에 맹장임.
..........초기때부터 유비의 인품에 빠져 공손찬이 망한 뒤 유비의 막하로 들어오게 된다.
..........의리가 굳고 인자스러운 무인이었으며 창법에 통달하고 무예가 절윤했다.
..........수 많은 싸움에서 장수의 목을 벴으며 당양 장판땅에서 유비의 아들 유선을 단신으로 품에 안은채 백만 대군 사이를 돌파한다.
..........훗날 나이의 늙음의 지지 않고 단신으로 위나라의 여섯 장수의 목을 베니 위의 장수들이 혀들 내두르며 두려워 했음.
..........제갈량의 두번째 출사표를 낼 때 병사하자 제갈량이 사흘을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했으며 후주 역시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혼절할 정도로 덕이 많은 장수였다.
..........상산 진정 사람으로 자는 자룡, 시호는 순평후임.
주창(周倉)
..........관우의 휘하 맹장으로 수전에 매우 능했으며 관우의 곁에서 관평과 함께 평생 다해 모신다.
..........훗날 관우가 죽은 뒤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성벽에서 자살하였음.
..........진창 파구 사람으로 자는 맹호임.
진진(辰賑)
..........원래는 원소의 문관이었으나 유비의 인품에 빠져 유비와 하북에서 탈출한다.
..........평생을 외교쪽에서 일하여 제갈량의 신임을 얻었으며 인품 역시 높았다.
..........성도에서 병사하였음.
..........북평사람으로 자는 교리임.
팽양(膨良)
..........촉의 유비가 재주를 알아보고 등용함.
..........수 차례 봉명 사신으로 나아가 그 임무를 완수했으나 유선에게 사약을 받고 죽었음.
..........관한 사람으로 자는 영년임.
황충(黃忠)
..........원래는 장사 태수 한현의 장수였지만 유비가 의로써 설득하여 유비의 맹장이 되었음.
..........오호장군의 시호를 얻고 한중땅을 손에 넣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조조의 맹장 하후연의 목을 벤일은 너무도 유명하다.
..........훗날 관우의 복수전에서 오나라의 장수의 목을 베며 돌진했지만 많은 화살을 맞고 군중에서 유비가 보는 앞에 죽게됨.
..........유비가 혼절하며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양양 충전사람으로 자는 한승임.
삼국지 영걸전
위 나라
가나다라 순
가허(賈許)
..........위(魏)나라 조조의 모사(謀士)로써 관직은 태위였다.
..........아버지인 마등(馬藤)의 복수를 위해 남하하던 마초(馬超)를 한수(漢手)와 이간질시켜 격파시킨다.
..........무위 사람으로 자는 문화이다.
공융(孔融)
..........공자(孔仔)의 직계후손으로 그의 주위엔 항상 손님의 발길이 끊인적이 없었고 술잔이 빌 때가 없었다.
..........북해상에 임명되어 제자양성에 힘썼으나 결국엔 조조의 시기심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노국사람으로 자는 문거임.
곽가(廓嘉)
..........위(魏)나라의 모사로 조조가 가장 아꼈던 선비였다.
..........관직은 군제주에 머무르면서 원소를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우지만 천명이 다하지 못하여 39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조조가 사흘을 통곡하며 식음을 전폐했다고 한다.
..........양척사람으로 자는 봉효이고 시호는 정후이다.
두습(杜襲)
..........위(魏)조조의 문사로 수화에 능하여 조조가 항상 곁에 있게 할 정도였다.
..........관직은 정중대부로 관학(학교)을 많이 세워 인재양성이 힘쓴 사람임.
..........영천 정릉 사람으로 자는 자서라함.
등애(鄧艾)
..........위(魏)조비(曹丕)의 모사로써 모사 종회와 함께 촉(蜀)을 공략할때 가장 큰 공훈을 세웠으나 강유의 계략에 빠져 성도로 압송되는 도중 분사한다.
..........의양 자양 사람으로 자는 사계임.
만총(滿寵)
..........위(魏)여러차례로 쳐들어오는 오군을 선봉이 되어 물리쳤으며 관직은 태위였음.
..........산양 창읍 사람으로 자는 백영이다.
문빙(文聘)
..........위(魏)지략/무력을 겸비한 장수로 수년간 강하에 주둔하면서 동오에 이름을 떨쳤다.
..........합비에서 손권의 진으로 뛰어들어 손권의 간담으로 서늘케 할정도로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 있던 장수이다.
..........후장군으로써 남양완 사람 자는 중업, 시호는 장후이다.
방덕(龐悳)
..........위(魏)원래는 마초의 부장이었으나 후에 마초와 헤어진 후에 조조에게 투항한다.
..........후에 관우가 양양을 치러 오자 비장한 각오를 한채로 싸움에 임했으나 관우의 부장 주창과의 싸움에서 지게되어 사로잡히게 된다.
..........관우가 회유하려했지만 대장부답게 거절했다.
..........서량사람으로 자는 중사임.
사마사(司馬篩)
..........위(魏)사마의의 장자로 병서에 능통하였다.
..........부친의 뒤를 이어 위의 승상을 맡았으며 후엔 아우인 사마소와 위의 정권을 잡고 뒤 흔들게 된다.
..........후에 문제라 추존됨.
..........북관사람으로 자는 자원이었음.
사마소(司馬沼)
..........위(魏)사마의의 둘째 아들로 형인 사마사가 죽자 스스로 위의 대장군이 되어 정권을 취득한다.
..........그의 아들인 염이 정권을 찬탈해 진을 세운다.
..........진왕으로 추대되며 자는 자상임.
사마의(司馬懿)
..........위(魏)권모술수에 능했으며 조조가 속으로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위에서 가장 뛰어난 모사로써 제갈량으로 하여금 중원을 넘보지 못하게 하였고 평생 제갈량이 한스럽게 생각한 사람이기도 하다.
..........승상에 구석을 받았으며 손자 염이 위에서 진으로 찬탈한 뒤 선제라는 칭호을 받았다.
..........하내 온 사람으로 자는 중달임.
서황(徐黃)
..........위(魏)에서 알아주었던 맹장으로 한자루의 대도(大刀)를 잘 썼다.
..........관직은 우장군이었고 여러싸움에서 용맹을 떨쳤지만 위를 배신한 맹달이 쏜 화살이 이마에 박혀 죽고만다.
..........하동 양군 사람으로 자는 공명 시호는 장후이다.
순욱(筍彧)
..........위(魏)별의 왕좌의 자리를 타고났으며 조조를 따라 수차례 출병하여 계략을 펼쳤다.
..........훗날 구석을 받아야 하는 조조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나서 통분한 나머지 음독 자살을 한다.
..........영천 영음사람으로 자는 문약이었음.
순유(荀硫)
..........위(魏)순욱의 아들로 아버지와 달리 야망이 컸으며 조조의 신임을 받아 많은 계책을 장막안에서 폈다.
..........관직은 상서령에 이르렀으며 자는 공달.
신비(辛毗)
..........지식과 도략을 모두 겸비했으며 처음에는 원소의 휘하에 있었으나 원소가 조조에게 망한뒤 조조의 휘하로 들어가 많은 전투에서 계략을 내어 조조를 돕는다.
..........영천 양적 사람으로 자는 좌흡 시호는 숙후임.
악침(樂琛)
..........악진의 아들로 제갈탄과 함께 사마형제를 토벌하고 정권을 잡으려고 했으나 군사들의 배신으로 자기의 진에서 피살당했다.
..........동영 중천 사람으로 자는 윤군, 시호는 민후이다.
악진(樂進)
..........위나라의 무장으로 수 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워 조조에게 절충장군의 벼슬을 받았다.
..........양평 위국 사람으로 자는 문겸 시호는 위호이다.
양수(楊修)
..........조조 휘하의 주부로 생각하는것이 매우 민첩하고 박학하여 상대방과 대화를 해도 절대 끝기는 법이 없었으며 사람의 심리를 잘 간파하였다.
..........지나치게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다가 한중의 전투에서 조조의 시기심으로 인해 죽게된다.
..........한 태위 양표의 아들임.
..........화흠사람으로 자는 덕조임.
왕낭(王朗)
..........위의 대신으로 박식했으며 한의 구신이다.
..........조조에게 일평생 진언을 하여 학교, 법조등을 편찬, 설립했다.
..........동해군 사람으로 자는 경홍이고, 시호는 낙평향후임.
왕쌍(王雙)
..........위의 맹장으로 조진이 추천한 장수이다.
..........제갈량이 기산으로 장안을 넘보려고 할때 위의 학소와 함께 진창땅에서 제갈량의 선봉을 막아내어 제갈량을 다시 촉으로 돌아가게한다.
..........뛰어난 무예를 지녔지만 제갈량의 치밀한 계략에 넘어가 위연에게 일격에 죽임을 당한다.
..........적도 사람으로 자는 자전임.
왕찬(王餐)
..........위의 문사로써 선비의 기질을 지니고 있었으며 학문을 논할때는 그 묘미가 극에 달했다고 한다.
..........건안칠자의 한명으로 관직은 조조의 시중을 맡았다.
..........산양 고편사람으로 자는 자균임.
우금(于禁)
..........위의 맹장으로 정벌에 출정하여 30년을 전장터에서 보낸 장수이다.
..........조조에게 편장군의 시호를 받고 훗날 관우가 양양을 치려고하자 방덕과 함께 출정했지만 관우의 손에 사로잡혔다가 다시 위로 돌아왔으나 조비의 농간으로 부끄러움을 이기지못하고 홧병으로 죽게된다.
..........태산 거평사람으로 자는 문측임.
이전(李典)
..........위의 장수로 많은 싸움터에서 적을 맞아 싸웠으며 오의 선봉군을 격파하는데 항상 공을 세웠다.
..........파로장군으로 제수되었으나 병사함.
..........사로 평군사람으로 자는 상형 시호는 민후임.
장간(張幹)
..........위의 모사로 웅변을 잘했으며 적벽대전에서 주유를 달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나중엔 방통의 계략에 빠져 그를 데려왔으나 결정적으로 위가 패하는 길을 마련해주게됨.
..........오나라의 군사손에 죽는다.
..........구강사람으로 자는 자익임.
장료(張遼)
..........위의 맹장임 조조를 따라 많은 공을 세웠으며 무술이 뛰어나고 도략에도 능해 매사를 잘 처리했음.
..........부상당한 몸으로도 불구하고 합비에서 단신으로 뛰어들어 분전했으나 격전중에 상처가 터져 죽게된다.
..........안문 마읍사람으로 자는 문원임 시호는 강후로 본래 성은 섭임.
장합(張哈)
..........위의 맹장으로 수차례 정벌에 출동하여 벼슬이 전장군에 이러렀으며 하변에서 장비와 일대일로 겨루어 촉에 이름을 떨쳤다.
..........후에 단신으로 싸우는 모습을 제갈량이 보고 촉에 해가될 장수로 보고 목문도로 유인한후 궁병으로 장합을 죽이게 된다.
..........하간 정사람으로 자는 준예이며 시호는 장후임.
전위(典韋)
..........위의 장수로 팔의 힘이 대단하여 무거운 쌍철극을 주무기로 싸웠다.
..........조조의 후군을 맡았으며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후에 장수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맨몸으로 조조의 장막으로 보호했으나 궁병의 공격으로 피를 한말이나 토하고 죽었다.
..........후에 그 사실을 안 조조가 위령제를 세우고 사흘을 통곡하며 위했다고 한다.
..........진류 파병사람으로 자는 후양임.
정욱(程昱)
..........위의 모사로 주로 진을 치는것과 전략에 대해서 조조에게 진언을 했다.
..........머리가 뛰어난 수재로 수차례 출정하여 많은 공을 세운다.
..........개인적으로 제갈량을 존경했으며 병사한다.
..........동군 동아 사람으로 자는 중덕이며 시호는 숙후임.
조비(曹丕)
..........조조의 장자로 아버지인 조조가 죽은 뒤에 뒤를 이어 한의 황제를 내쫓고 자신이 황제가 되어 실질적인 위나라의 기틀을 세움.
..........나이 38세에 병에 걸려 죽음.
..........자는 자환이며 시호는 문무황제임.
조상(曹爽)
..........위의 장수 조진의 아들로 공훈을 세워 대사마가 되었으며 후에 모반할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미 알아챈 사마의에 의해 죽임을 당함.
..........자는 소백임.
조식(曹植)
..........조조가 원래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했던 셋째 아들로 학문에 깊고 시를 짓는 것이 뛰어나 건안칠자의 한사람이다.
..........재사가 민첩하여 조비의 앞에서 심금을 짜내는 칠보시를 지어 조비로 하여금 원한을 가시게 하였다.
..........후에 외지를 떠돌아 다니며 많은 시를 지어냈으며 부, 송, 시, 잡론 등등 많은 문학책을 집필하였다.
..........후에 진왕에 책봉되었으며 자는 자건 시호는 사임.
조예(曹叡)
..........위 조비의 아들로 용모가 준수하고 머리회전이 빨랐다.
..........과묵한 성격으로 방림원에서 향략만을 추구하다가 병사함.
..........자는 원중으로 시호는 원제임.
조인(曹仁)
..........조조의 종제로써 많은 공훈을 세웠으며 후에 대장군이 되어 진후에 책봉되었음.
..........자는 자효 시호는 충임.
조조(曹操)
..........상황을 살피는데 민첩하고 무와 권모술수가 뛰어났으며 자신의 이름나는 것을 좋아했다.
..........처음에 의군으로 동탁을 정벌하려고 했으며 후에 한의 승상이 되어 황제의 모든 권한을 습득한뒤 천하를 호령한다.
..........무력으로 많은 군웅을 제압했으나 결국 유비, 손권만을 물리치지 못했다.
..........스스로 위왕이 되어 구석을 누렸으며 고질인 두통을 고치지 못하여 정신착란증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은 죽게됨.
..........조비가 한을 찬탈한뒤 선제의 칭호를 받았으며 패국사람으로 자는 맹덕임.
조진(曹眞)
..........조조의 족질로써 수 차례 공훈을 세워 대사마에 오르게되고 후에 중원을 넘보는 제갈량과의 싸움에서 번번히 패하다가 제갈량이 글을 써서 조진을 조롱하니 분함을 삭이지못하고 죽게됨.
..........시호는 원후로 자는 자단임.
조창(曹彰)
..........조조의 둘째 아들로 무예가 뛰어났다.
..........훗날 북방 오랑캐를 평정하고 그들을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임성왕에 책봉되었으며 자는 자문임.
조휴(曹休)
..........조조의 족질로 도략이 높아 조조를 옆에서 보좌함.
..........그 뒤 제갈량과의 싸움에서 연이어 패하자 통분함으로 참지 못하고 등창이 터져죽게됨.
..........자는 문렬임.
종요(鐘繇)
..........위의 종령장으로 형옥을 현명하게 처리했다.
..........영천 장부사람으로 자는 원상임.
종회(鐘會)
..........위의 태부 종요의 아들로 등애와 함께 촉을 정벌하고 강유의 계략에 동조하고 위에 반역을 일으켰지만 휘하 장수들의 배반으로 죽게됨.
..........영천 장사람으로 자는 사계임.
진임(陣淋)
..........원래는 원소의 문관이었으나 조조에게 정벌당한뒤 그의 휘하로 들어가니 그의 재주를 높이 산 조조가 그에게 나라의 국가, 법, 군사등에 관한 모든 글과 격문을 그에게 맡긴다.
..........광릉사람으로 자는 공장임.
최염(崔琰)
..........위나라의 인재등용관으로 천하의 인재를 잘 가려내어 전형의 중임을 맡게됨.
..........훗날 조비의 시기로 옥에 같혀 자살을 함.
..........자는 계서임.
하후연(夏侯淵)
..........위의 맹장으로 개국공신임.
..........조조의 젊을 시절부터 생사고락을 같이 해오며 공훈을 세웠으며 타도계를 가장 많이 썼다.
..........후에 촉의 오호장군인 황충의 대도에 목을 잃게 된다.
..........자는 묘재로 시호는 정서황임.
하후돈(夏侯惇)
..........위의 맹장중에 맹장.
..........무예가 매우 뛰어났으며 이름을 천하에 울린 장수이기도 하다.
..........전투에서 화살이 눈에 박혔으나 화살을 뽑아내고 세장수의 목을 베니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후에 병에 걸려 죽게됨.
..........자는 원양으로 시호는 충후임.
하후패(夏厚覇)
..........위의 하후연의 아들로 아버지를 닮아 무예가 뛰어났으며 사마의가 제거하려고 하자 촉에 투항하여 기회를 엿보았으나 조양의 공격으로 난전중에 전사했다.
..........자는 중권임.
삼국지 영걸전
오 나라
가나다라 순
감녕(甘寧)
..........오의 장군으로 강좌호신(江左虎臣)이라고 불리웠던 사람이다.
..........훗날 위의 조조가 침공하여 왔을때 군사 100기만을 거느린 채로 진채를 급습하여 조조의 간담을 서늘케하기도 하였다.
..........촉제 유비의 관우 복수전에서 촉군이 쏜 화살이 이마에 박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임강 사람으로 자는 흥패라 함.
감택( 澤)
..........관직이 태자태부까지 이르렀던 선비로 오나라에서 빼 놓을수 없는 유능한 선비였다.
..........회계 산음 사람으로 자는 덕윤이었음.
고옹(顧雍)
..........오의 승상을 19 년간 지내면서 보이지 않는 선정을 백성들에게 펼쳐온 인물이다.
..........오군 사람으로 자는 대탄.
노숙(魯肅)
..........오의 임회 동성 사람으로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에 맞서기 위해 단신으로 유비와 화친을 맺음과 동시에 제갈량을 오나라로 초청한다.
..........적벽대전을 승리로 끝난 후에 제갈량에 의해서 분사한 주유의 뒤를 이어 대도독의 자리에 올랐지만 병사한다.
..........지나치게 마음이 좋아 호인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자는 자경.
능조(凌操)
..........오군 여항 사람으로 손책이 오의 기업을 일으킬때부터 그를 따른 구신으로 여러 싸움터에서 용맹을 떨쳤으나 유표 휘하의 장수 황조가 거느리고 있던 감녕에 의해서 화살을 맞고 죽었음.
능통(凌統)
..........감녕의 화살에 맞아 죽은 능조의 아들로써 적벽대전 때 조조의 대병을 오림에서 크게 무찔렀으며 후 조조의 침공전에서 손권을 사지에서 구해낸 공훈으로 편장군의 직위에 오르게 된다.
..........자는 공적.
동습(董襲)
..........수군 통솔 능력이 뛰어났으며 전공을 많이 세워 편 장군의 직위까지 올라갔다.
..........강하를 지키던 황조를 토벌하는 등 많은 공을 세우게 된다.
..........회계 여요 사람으로 자는 원대임.
반장(潘璋)
..........손권을 섬기면서 여러차례 크고 작은 공훈을 세운 장군이다.
..........손권이 정식으로 등극한 이후에 우 장군에 봉해짐.
..........유비가 일으킨 관우 복수전에서 관우의 아들 관흥에게 손권에게 상으로 받은 관우의 청룡언월도와 자신의 목을 내주게 됨.
..........동군 발간 사람으로 자는 문규.
서성(徐盛)
..........손권때부터 수 차례 전투에 참가하여 공훈을 세워 안동장군에 봉해졌던 사람이다.
..........특히 수전에 능했다.
..........낭야 사람으로 자는 문향.
..........시호는 무호후에 책봉되었다.
설종( 綜)
..........오의 손권 밑에서 일한 바 있는 문사로써 오관중랑과 교지태수를 지낸 문신이다.
..........패군 죽읍 사람으로 자는 경문.
손견(孫堅)
..........오의 손무자의 후예로 황건적 토벌의 공훈과 거성을 토벌한 공훈으로 오정후에 책봉이 되었다.
..........역적 통탁을 처단하기 위해 조조에 의해서 모인 의군에서 활약하는 도중 황제의 도장인 옥새를 얻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원소와 유표의 미움을 받기도 하였다.
..........전장에서는 용맹스러운 인재를 대함에 있어서는 선비의 풍모를 유감 없이 발휘하여 많은 휘하 장수를 이끌었지만 훗날 유표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유표의 계략에 빠져 돌에 짓눌려 죽게 된다.
..........둘째 아들 손권이 황제로 등극하게 되면서 무열황제라 추존이 되었으며 부축 사람으로 자는 문대.
손교(孫 )
..........손정의 셋째 아들로써 호군교위에서 점차적으로 진급하여 정로장군에 봉해짐.
..........자는 숙랑.
손권(孫權)
..........무열황제 손견의 둘째 아들로써 부친인 손견과 형인 손책이 마련해둔 기반 아래서 강동에 지반을 굳혀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연합하여 조조를 크게 격파시켰다.
..........손씨 가문에서 가장 명이 길 것이라는 계시를 받은 바 있으며 덕이 많고 겸손하여 주위에 많은 인재들이 구름 같이 몰려 들었다.
..........훗날 오왕이라고 칭하여졌으며 자는 중모.
손등(孫登)
..........손권의 장자로써 손권이 그를 황태자로 삼았는데 어린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자는 자고로써 시호는 선태자.
손림(孫淋)
..........오나라 손준의 종제로써 손준이 죽자 시중이 되었다가 대장군이 되었는데 그 후 손양이 등극하여 자신을 제거하려다가 사전에 탄로나자 손양을 폐하고 손휴를 세워서 스스로 대장군에 승상을 겸임 하였다.
..........자는 자통이며 영녕후에 책봉.
손소(孫韶)
..........병법에 상당히 뛰어났던 장수로 승렬교위의 자리에 있다가 손권이 정식으로 등극한 이후에 진북장군에 제수하고 유주목에 봉해졌다.
..........원래 성이 유씨였으나 손권의 형 손책이 자별히 아끼여 그를 손씨로 개명하여 주었다.
..........여러 싸움터에서 크고 작은 공을 세우며 오나라에 충성을 다한 공신이기도 하다.
..........자는 공례이며 건덕후에 책봉.
손양(孫亮)
..........손권의 아들로써 손권이 죽자 위를 이어 받았는데 대장군 손림이 정권을 잡고 정권을 잡고 휭포를 부리자 그를 제거하려다가 사전에 탄로가 나서 손림에게 폐위되고 회계왕으로 있다가 다시 격하되어 후환후가 되어 쫓겨났다.
..........자는 자명.
손익(孫翊)
..........손견의 셋째 아들로써 편장군과 단양태수 자리를 지키던 사람이었다.
..........천성적으로 성정이 거칠고 술을 좋아하여 끝내는 위람과 대원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
..........자는 숙필.
손책(孫 )
..........손견의 장자로써 부친이 유표의 계략에 휘 말려 전사한 후에 부친의 목과 황조를 교환한 후에 잠시 힘을 키우기 위해서 원소의 동생 원술의 막하에서 활약하다가 아버지 손견의 유품인 전국 옥새를 담보로 원술에게 군사를 빌려 강동을 차지한다.
..........후에 조조에게 밀서를 보냈던 허공을 죽인후에 허공의 수하들에게 변을 당하여 병상에 누워있던 중 강동 일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던 도사 우길을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여 죽여 그 원혼을 못 이겨 나이 26세에 동생 손권에게 강동의 지위권을 물려준 후에 요절하게 된다.
..........무예와 인재를 받아들이는 덕이 뛰어났으며 그가 이루어 놓은 기반이 있었기에 동생 손권이 훗날 오나라를 지탱할 수가 있었다.
..........손권 등극 후에 장사환왕이라 추존 받았으며 자는 백부.
손호(孫皓)
..........손권의 손자로써 오정후로 있었는데 손휴가 죽은 후에 중신들의 추대를 받아 제위에 올랐으나 십여년 동안 잔인 무도한 일을 서슴치 않고 자행하여 끝내는 국력이 기울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여 위나라의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위를 찬탈하여 세운 진에게 복속 되고 말았다.
..........자는 원종.
손환(孫桓)
..........손책의 양아들로써 손책이 죽은 후에도 손권의 사랑을 받아 안동중랑장을 지내며 육손을 도와 아우 관우의 복수를 위하여 동진하던 촉제 유비의 대군을 물리치며 수 차례에 걸친 위군을 막아내기도 하였다.
..........자는 숙무.
손휴(孫休)
..........손권의 여섯째 아들로써 학문을 좋아하고 백가의 여러 가지 격언에 능했으며 처음에는 낭야왕으로 책봉이 되었다가 후에 손양이 폐위되자 제위에올랐다.
..........자는 자열.
엄준(嚴 )
..........어릴적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시경삼례에 통달하고 학문을 논하기 좋아하고 효경전과 조수론을 저술하기도 되었음.
..........훗날 위위가 되어 촉에 사신으로 가서 제갈량과 깊이 사귀었으며 또한 상서가 되었다.
..........팽성사람으로 자는 만재.
여대(呂垈)
..........오의 장수로써 지모에 능했으며 항상 예기치 못한 출병을 이루어 승리를 얻어내기도 하였다.
..........번우후와 진남장군을 배수 받았으며 후에 요식이 반란을 일으키자 토평관이 되어 반란을 진압하였다.
..........광릉 해릉 사람으로 자는 정공.
여몽(呂蒙)
..........오의 장군으로 주유를 따라 조조를 오림땅에서 대파하여 편장군을 제수받았으며 노숙이 죽은 후에 관우와 대치하고 있던 육구에 둔병하게 된다.
..........관우가 촉제 유비의 명을 받아 양양의 조인을 치러 떠났을 때 봉화대의 허술한 경비를 이용하여 계책으로써 강하땅을 되 찾게 되었으며 맥성에서 수세에 몰려있던 관우와 관평이 촉으로 도주할 것을 간파하여 부장 반장을 통하여 관우 부자를 생포하는 공을 세웠다.
..........남군 태수를 제수 받았으나 괴질로 급사하였으나 민간에서는 죽은 관공의 혼령이 몸 안에 깃 들어 손권이 친히 연 축하연에서 몸의 여덟 구멍으로 피를 뿜으며 죽었다는 민담도 있다.
..........잔릉후에 책봉 되었으며 여남 부파 사람으로 자는 자명.
여범(呂範)
..........지모가 뛰어났던 오의 장수로써 오나라의 19년간 승상직을 지냈던 여범을 도와 재정관리 부분에서 그 능력을 선 보였다.
..........훗날 손권이 황제를 칭한 후에 대사마의 자리를 받았으나 노환으로 인해 인수를 받지 못한 채 죽었음.
..........여남 서양 사람으로 자는 자형.
오국태(吳國太)
..........손책, 손권의 아버지인 손견의 정실 부인으로 국모로써의 풍모를 갖추었으며 사리 판단에도 밝았다.
..........특히 손책이 젊은 나이에 요절할 때의 침착함을 지키면서 국모로써 위엄을 지켰던 것이 유명하다.
우번(虞飜)
..........역리에 통달하였으며 의술도 겸 하였던 여러 가지 분야에 박식했던 오의 문신.
..........오를 위해서 헌신하면서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강의를 한 번 시작하면 말이 끝기질 않았으며 피곤한 기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역, 노자, 논어, 국책 등에 그의 식견을 첨가하기도 하였으며 이들은 지금까지도 모두 전서로 전해지고 있다.
..........손권 등극 후에 손권에게 미움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 제자 양성에만 전념하니 수제자가 백여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회계 여요 사람으로 자는 중상이며 관직은 기도위였다.
육손(陸遜)
..........처음에는 한 낱 더벅머리 백면서생으로 오에 알려졌던 이였지만 남 모르게 스스로 병법에 통달하였으며 대략을 가슴 깊이 품었던 뛰어난 사람이었다.
..........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관우의 복수를 위해 동진하는 촉제 유비를 막기 위해서 마지막 수단으로 전장에 투입이 되었으며 지모를 써 유비의 대군을 화공으로 대파 시켜 촉제 유비가 간신히 살아 돌아갈 정도였다.
..........후에 공이 인정되어 보국장군과 형주목을 배수 받고 강릉후에 책봉이 되었다.
..........손권이 정식으로 황제에 등극한 후에 오의 승상이 되었으며 적자를 폐 하려는 조정의 방침을 극력 반대하였으나 이를 껴 들은 중신들이 그를 도리어 힐책하니 통분한 끝에 병이 들어 분사하였다.
..........오군 사람으로 자는 백언임.
육항(陸抗)
..........육손의 아들로써 대사마에 형주목을 지내다가 지병으로 인하여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자는 유절.
장굉(張紘)
..........손책이 강동에 창업을 이룩한 뒤에 장소와 더불어 그를 보필했던 개국 공신이자 참모.
..........손책이 죽은 후에 충심으로 손권을 섬겨 지략에 능하고 문장을 잘 지어 오를 지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광릉 사람으로 자는 자강.
장소(張昭)
..........손책이 창업을 이룬 뒤에 장사, 무군중랑장을 지낸 바 있는 개국 공신.
..........문무의일을 주로 맡아 손책, 손권이 그에게 도움을 총하여 모든 일을 결정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던 인물이다.
..........총정하고 강직하여 바른 말을 잘 하니 손권이 이를 속으로 두려워했다.
..........팽성 사람으로 자는 자포.
장온(張溫)
..........강학을 잘 했으며 대담에 능숙하여 사신접대의 적임자로 외교 분야에서 그 능력을 발휘했던 문관.
..........손권에게 신임을 얻어 태자 태부가 되었으나 그의 명성이 너무 높았던 탓에 손권이 이를 시기한 끝에 무고한 죄를 뒤집어 씌워 쫓아냈다.
..........오군 사람으로 자는 혜서임.
장흠(將欽)
..........무예에 뛰어났으며 특히 수군의 통솔을 맡아 그 능력을 발휘했던 용장이다.
..........훗날 수군을 이끌고 면환으로 진격하다가 도중에 죽고 말았음.
..........구상 수춘 사람으로 자는 공역.
정보(程普)
..........손견, 손책, 손권 삼대에 걸쳐 오에 충성을 다한 개국 공신이자 구신이며 맹장이었던 사람이다.
..........관직은 탕구 장군으로 손견을 따라서는 황건적 토벌을 시작해서 적벽 대전, 그리고 촉한 유비의 침략까지 충성을 다하여 위, 촉의 대군을 막아내었으나 병사하고 말았다.
..........우북 평토은 사람으로 자는 덕모.
정봉(丁奉)
..........큰 일을 처리하는데 침착하고 능숙하였으며 계책에 뒤어나 설중에 제갈탄의 군사를 동흥에서 대파하여 위국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던 했던 장수이다.
..........훗날 장포와 함께 손림을 물리치고 대장군에 서주목을 배수받았으며 크고 작은 싸움에서 눈 부신 전공을 세웠다.
..........여강 안풍 사람으로 자는 승연.
제갈각(諸葛恪)
..........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의 아들로써 구변에 능숙하여 위북장군의 자리에 올라 손권이 태자의 보필을 부탁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육손이 죽은 후에 대장군으로 무창에 주둔하고 형주를 다스리다 반대파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자는 원손.
제갈근(諸葛瑾)
..........촉한 승상 제갈량의 형으로 제갈량보다 먼저 벼슬자리에 올라 오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용모가 준수하였으며 특히 친모가 아닌 계모에게 그 효성이 지극하여 많은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기도 하였다.
..........간할 때는 직접 반대하는 말을 하지 않고 늘 비유하여 돌려 말하는 너그러운 성품으로 손권이 등극한 후에 대장군, 좌도호에 예주목을 배수 받았으나 병사하고 말았다.
..........낭야 남양 사람으로 자는 자유임.
조무(祖茂)
..........손견의 심복 장수로써 역적 동탁을 치기 위해 조조가 주선한 연합군에 손책과 참전하여 동탁의 맹장 화웅과 접전을 벌이던 중 손견이 싸움에서 대패하고 위기에 처하자 손견의 붉은 머리띠를 대신 매고 적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함.
..........우군 부춘 사람으로 자는 대영.
주방(周 )
..........팽식과 팽기가 오를 침입하자 이를 무찔러 파양태수에 소의교위가 되었으며 위의 조휴를 유인 계책을 이용하여 대파시켜 손권으로부터 관내후를 배수받음.
..........오군 양선 사람으로 자는 자어.
주연(朱然)
..........손권이 정식으로 등극한 이후에 소위장군에 오르고 서안향후를 배수 받음.
..........관우의 혼령에 횡사한 여몽을 대신하여 강릉을 촉과 위로부터 지키고 당양후 좌대사마 우군사에 책봉이 됨.
..........자는 의봉으로 본성은 시.
주유(周瑜)
..........손견의 첫째 아들 손책과 죽마고우로써 손책이 강동를 점거하자 건위중랑장 자리를 배수 받았음.
..........손책이 요절한 후에 손권을 도와 오의 모든 병권을 맡고 조조에게 패배하여 강하까지 물러온 유비와 동맹을 맺어 제갈량과 노숙의 힘을 빌어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을 대파시켰음.
..........훗날 제갈량의 계략에 번번이 넘어가자 화살에 의해서 상처 입었던 부분이 터져 통분한 나머지 선상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여강 서 사람으로 자는 공근.
주치(朱治)
..........손견을 따라 황건적등 수 많은 도적의 토벌에 공이 컸으며 손견이 죽자 손책을 받들어 강동을 평정하여 오군 태수 자리를 배수 받음.
..........오랑캐를 정벌해서 동남방을 평정하고 황건적의 잔당을 뿌리 뽑아 안국장군과 고장후를 다시 배수 받음.
..........단양 고장사람으로 자는 군리.
주태(周泰)
..........손책을 따라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손권을 여러번 생사의 갈림길에 몸을 아끼지 않고 호위하여 손권이 그를 각별히 아껴 자신의 측근에 집무케 했다.
..........한중태수에 능양후에 책봉이 되었지만 훗날 노환으로 병사한다.
..........구강 하채 사람으로 자는 유평.
주환(朱桓)
..........오의 장수로써 병서에 능통하고 계략에 밝았으며 무예 역시 뛰어났다.
..........여요를 대번에 물리치고 정복지에서 오랫동안 오의 선정을 베풀었음.
..........훗날 유수도독을 맡을 시기에 조인의 대군을 뛰어난 지략을 이용하여 대파하였다.
..........가흥후 탈무장군으로 봉해짐.
..........오군 오 사람으로 자는 휴목.
진무(陳武)
..........손책을 따라 출정하여 공훈을 세웠고 손권이 등극 후 편장군을 지내다가 합비에서 위군에 의해서 죽게 된다.
..........여강 송자 사람으로 자는 자열임.
태사자(太史慈)
..........손책과 혈투를 벌이고 그의 인품에 매료되어 손책을 따라 여러 싸움에서 크고 작은 공을 얻어 건창도위를 지냈으며 무예에 절륜하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였다.
..........황건적 난 당시에 북해상 태수 공융과 두터운 친분이 있었음.
..........장료에 계략에 넘어가 무수히 많은 화살을 받고 후송중 분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한말이나 토하고 죽었음.
..........동래 황 사람으로자는 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