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몽골(Mongolia)

My-views 2008. 11. 17. 16:05
(자료출처 ; 몽골문화원, 몽골대사관, http://www.shoestring.co.kr/destinations/asia/mongols.htm 등등)

몽골(Mongolia)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항상 징기스칸(Genghis Khan)장군, 고비사막을 떠도는 낙타, 대초원을 질주하는 야생 말과 같이 야성적이며 이국적인 광경이 떠오른다. 오늘날에도 몽골은 지구의 끝자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도인 올란바토르(Ulaan Baatar)외곽에서는 다른 나라에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세기에 발을 들여 논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곳은 아시아에서 최고의 모험이 남아있는 곳이다. 몽골이 독립국가로 남아있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기적이 아니다. 한때 방대한 유라시아(Eurasian)대초원의 지배자였던 몽골은 여러 세기 동안에 처음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의 식민속국이 아닌 독립국가로서 남아있는 것이다.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그들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몽골인 들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아서 유목민족은 완전히 사라지는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이제 이 나라는 법령과 다수정당 투표방식을 채택하였고 민주연합여당이 있는 나라이다.

몽골(Mongol)이란 용어는 원래 “용감한” 이란 뜻을 지닌 부족 명이었으며 징기스칸에 의해 통일된 몽골 부족의 발전에 따라 민족명(Mongol)으로 변화되었다. 과거에 사용되던 蒙古(몽고)라는 명칭은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인들이 주변민족을 몽매한 야만인이라고 경시하면서 청나라 이후 몽고라고 부른데서 유래했기에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1924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수립된 당시 국호가 “몽골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Mongolia)이었으나, 1992년 민주화이후 신 헌법에 의해 “몽골”(Mongolia)이 되었다. 우리가 보통 몽골이라고 하면 독립국 몽골을 말하는 것이며, 내몽골이라고 부르는 내몽골 자치주는 중국의 영토이다.

ㅇ수 도 : 울란바타르(Ulaanbaatar, “붉은 영웅”이라는 뜻), 북위 48°위치

ㅇ정부 형태 : 국회중심의 이원집정부제(의원내각제적 성격이 강함)

ㅇ독 립 일 : 1921.07.11(구 소련 적군(赤軍)과 연합하여 중국에서 독립)

ㅇ국가선포일 : 1924.11.26 (구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사회주의 국가됨)

ㅇ공 용 어 : 할흐 몽골어. 문자 : 키릴문자(러시아문자 차용)

ㅇ국 화 : 연 꽃

ㅇ문 자 : 키릴문자(1946년 이후 러시아 문자를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국가의 상징 >

ㅇ소욤보 : 표의 문자로서 몽골의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전통 문장이다. 이 소욤보는 1924년 제 1회 대인민회의 에서 민족문양 으로 정해졌다. 제일 윗부분 불꽃모양은 융성, 재생, 향상, 번영을 상징하고, 그 아래에 태양과 달은 몽골의 백성, 삶, 영광을 뜻한다. 가운데 부분의 역삼각형과 사각형은 ‘모든 사람에게 성실하게 봉사하라’는 상징이고, 가운데 태극모양 같은 것은 태극문양이 아니고 두 마리의 물고기이다. 두 마리 물고기는 방심치 않는 것이며, 두 마리는 남성과 여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양쪽에 수직으로 세워진 사각형은 요새와 성벽을 의미한다. 소욤보 문양은 국기(國旗)에도 들어가 있으며, 몽골 국가, 정부 기관의 상징으로 모든 레터지, 명함 등에도 들어가 있다.

ㅇ국기(國旗) : 일명 소욤보 기(旗)라고도 부르는데 직사각형이 3등분 되어있고 중앙은 청색, 양측은 적색이다. 깃대에 연결되는 좌측 적색부분에 황금색의 국가 문양 소욤보가 그려져 있다.

역사

이미 알려진 대로 몽골인 들은 800년 전쯤에 문자가 도입되기 전까지 그들의 수세기에 걸친 역사를 음유시인들이 노래한 입으로 전해져 온 서사시로 기록하였다. 주변국가와의 많은 접촉(대부분 불행하였지만)으로 인해 몽골에 대한 역사가 주변국가에 의해 많이 쓰여졌다. 5000년 전의 중국왕조 역사에서 몽골인과 그들의 선조 들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몽골인 들을 중국산 물건에 욕심이 많은 파괴적인 야만인으로 묘사하였고 늑대와 흡사한 사람으로 취급하였다. 고고학적 발굴에서 고비(Gobbi)와 몽골의 다른 지역에서 500,000년 전 인간의 흔적이 발굴되었다. 유목형식으로 가축을 기르는 것보다 먼저 농업이 시작된 것처럼 보이고 몽골의 짧은 여름에도 불구하고 밀농사를 유목생활과 병행하여 1000년 동안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유목하며 가축을 기르는 생활을 선택한 직후에 말, 야크, 낙타를 길들였다.

몽골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당 왕조(618-907 AD)때 처음 사용되었다. 그 시대에 몽골에는 위구르(Uighurs)인과 튀르크인 들이 여러 개 의 도시를 세우고 거주하고 있었다. 위구르인은 기독교 신앙에 영향을 받았고 몽골을 지배하게 된 후에 여러가지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중국의 당 황제를 도와주러 간 후  그들을 내부의 반란으로부터 지켜주었다. 위구르인들은 대부분의 몽골지방을 840AD에 키르그즈(kyrgyz)인(지금은 중국의 청진(xinjiang)지방에 살고있다)이 공격하기 전까지 지배하였다. 몽골에 남아있는 키르그주(kyrgyz)의 유물은 아래로 내려쓰는 서체이다 - 비밀역사 서사시와 그 후에 나타난 모든 몽골 문서는 1940년대 스탈린이 강제적으로  러시아시릴(Russian Cyrillic)문자로 대치하기 전까지 아래로 내려쓰는 서체로 쓰였다.

몽골은 북아시아의 다른 유목민들과 동맹을 맺는 경우는 없었고 12세기말까지 같은 부족 내에서 자유로운 부족간 동맹이 더 많았다. 테무진(Temujin)이라는 20살의 몽고청년이 출현하여 대부분의 몽골부족을 연합하는 성과를 올린 것은 12세기 후반이었다. 1189년 그는 징기스칸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그 의미는 '세상의 왕'이라는 뜻이다. 어떠한 몽골 지도자도 이처럼 효과적으로 몽골인 들을 통합한 경우는 없었다.

몽골인들이 몽골어로 징기스칸(Chinggis Khaan)을 경외시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징기스칸은 서양 난폭자들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철자가 틀린 것뿐만이 아니다 유럽인에게 그의 이름은 무자비와 전쟁의 화신으로 남아있고,  몽골사람들에게 그는 강함, 유일함, 법과 명령으로 인식되어있다. 그는 양립하지 않는 부족들을 단합하고 충성스러운 군사를 모으고(200,000명 이상)격심한 반목을 종결시켰으며 몽골인 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젊은 왕이었다. 징기스 는 오늘날의 카라코린(kharkhorin)에 수도를 세웠고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그가 신뢰하는 기병대(몽골의 우수한 타키말로  구성되었다)를 출병시켰다. 1227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몽골제국은 베이징에서 카스피해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징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Kublai Khan)(대략 1216-94)은 중국을 완전히 정복하여 송 왕조(960-1279)를 멸망시키고 원 왕조를 출범시켰다. 쿠빌라이는 곧바로 몽골제국의 확장이 한계에 도달하였음을 인지하였다. 싸움을 위한 전쟁을 찾아다니는 대신에 쿠빌라이는 방대한 제국을 함께 더욱 굳건히 지키는 것을 선택하였다. 이것이 몽골의 최고 전성기였다. 제국은 한국에서 헝가리까지 뻗어나갔고 남쪽으로는 베트남까지 도달하여 세계사에서 가장 큰 제국으로 남게 되었다. 몽골은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도로를 만들었고 유럽국가와 의 무역을 추진하였다. 빠른 속도로 중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넓은 대륙을 횡단해야 하는 사람을 위해 수천 필 의 말이 항상 준비되어있었다.

중국에서 몽골의 원 왕조는 기근해결사업을 모색하였고 시골에서 도시로 식량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운하를 확장하였다. 지폐를 통화의 유일한 방식으로 시행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마르코폴로와 다른 여행자들이 중국을 방문하고 그들이 본 것에 대해 기술하여 지식이 없었던 유럽인들에게 소개하였다. 중국에서  몽골제국의 장대함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1294년 쿠빌라이칸 이 죽은 후 몽골은 그들이 지배하던 사람들에 의해 끌려 다니게 되었다. 그들은 특별계급층으로 평판이 매우 나빴으며 세금면제를 받았고 몽골제국은 권력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파벌들로 넘쳐 났다. 14세기 중반 명 왕조 의 첫 번째 황제는 몽골을 베이징에서 추방했다. 60,000명 이상의 몽골인 이 몽골로 되돌아가는 바람에 원 왕조는 붕괴되었다. 그들의 연합은 붕괴되었고 전쟁은 자주 발발했으며 길고 긴 몰락의 시대가 이어졌다.

몽골이 불안한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 몽골의 오랜 적이었던 만주인 들은 청 왕조를 세웠다(1644-1911).그들의 군대는 용맹하였지만 만주인 들은 처음에 몽골에 대한 침략을 시도하지 았다. 사실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 몽골은 그들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서쪽의 준가(zungar) 몽골 족은 동쪽의 칼카(Khalkha)몽골 족과 격렬한 전쟁을 벌였다. 칼카족의 심각한 실수로 인해 준가 족이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칼카족은 만주의 청 왕조를 끌어들여 군대를 파병하길 바랬다. 대부분의 몽골 족처럼 준가 족 병사들도 말 등  에서 활을 쏘는 숙련된 병사들이었다. 그러나 만주는 머스킷(Musket)총과 대포라는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몽골인 들은 전쟁을 수행조차 못했다. 1732년 준가 몽골 족 은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패배하였고 몽골은 만주차이나(manchu China)의 지배하에 놓였다.

만주족은 1800년경까지 정당하고 매우 합리적으로 중국을 통치하였다. 그 후에 청 제국은 점점 부패와 독재성을 띄게 되었다. 중국과 몽골의 소작농들은 무자비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했고 많은 세금을 징수 당했으며 약간의 반항에도 비인도적인 처벌을 당해야했다. 결국 몽골은 반란을 도모하려고 많은 시도를 하였다. 1911년 중국의 청 왕조가 멸망하였을 때 몽골은 재빨리 기회를 포착하였고 1911년 12월 1일에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때 몽골은 젭준담바(Jebtzun Damba: 살아있는 부처)의 지도하에 신권정치를 지향하는 정부를 세웠다. 1915년 5월25일 몽골에게 제한된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의 카야카다조약(Kyakhta)에 몽골, 중국, 러시아가 서명했다.

1917년 10월에 있었던 러시아 혁명은 몽골의 귀족정치에 충격을 주었다. 러시아가 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중국은 1919년 몽골로의 진격명령을 내렸고 수도를 점령하였다. 1921년 초에 후퇴한 백러시아(White Russian)의 반공산주의 군대가 몽골로 진군했고 중국을 내몰았다. 야만적인 중국과 러시아군대로 인해 몽골은 독립에 대한 열망은 불타올랐다. 시베리아에서 백러시아군대에 비해 러시아 공산당이 확실하게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몽골의 민족주의자들은 러시아 공산당에 도움을 청했다. 같이 힘을 합쳐 1921년 6월에 올란바토르를 다시 되찾았다. 몽골의 불교지도자는 명목상의 대표로서 계속 유지되었고 새롭게 구성된 몽골인민당(몽골역사에서 첫 번째 정당이었고, 그후 69년 동안 유일한 정당이었다)이 정권을 이어받았다.

1924년 11월26일에 몽골인민공화국(MPR)을 선포하였고 몽골은 세계에서 2번째 공산국가가 되었다. 몽골 공산주의는 1920년대 후반 스탈린(Stalin)이 절대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소련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충분히 유지되었다. 하지만, 숙청은 곧 시작되었다. 스탈린의 앞잡이인 코루지니초이발상( Khorloogiyn Choibalsn)이 몽골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초이발상은 스탈린의 지휘에 따라 토지와 가축을 몰수한 후 소작인들에게 재분배하였다. 1932년 700명 이상(대부분 승려였다)이 투옥되거나 살해당했으며 그들의 재산은 압류 당하고 공영화되었다. 농부들은 협동농장에 강제로 투입되었다. 개인사업은 무너졌고 중국을 비롯한 외국무역상들은 추방당했고 모든운송수단은 국유화되었다.

정부의 종교반대운동은 특히 무자비하게 진행되었다. 1937년 공포의 시간이 수도원에 도래하였고 수천의 승려들이 체포되거나 사형 당했다. 1939년에 27,000명 정도의 시민이 사형에 처해졌으며(그 당시 몽고 인구의 3%에 다다른다) 그중 17,000명은 승려였다고 알려졌다.

1980년대 초기에 소련정부가 침체상태로 흔들리고 있을 때 몽골은 잠빈밧몽크(Jambyn Batmonkh)의 지도하에 있었다. 그는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에 의해 재정비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지방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밧몽크는 1986년 페레스트로이카 와 글라스노스트정책의(몽골에서는 일토드(il tod)로 알려졌다) 조심스러운 시도를 종용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 중국과의 관계가 서서히 개선되었고, 1989년 완전한 외교상의 관계가 다시 확립되었다. 소련연방의 붕괴는 몽골의 자치권인정에 대한 불이행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몽골에서는 소련의 붕괴정도에 신경을 쓰거나 그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90년 3월 올란바토르의 국회건물 앞 광장에서 과거의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규모의 집회를 가졌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으며 밧몽크는 권력을 상실했다. 새로운 정당이 생겨났고 격렬한 시위와 항의는 계속되었다. 5얼에 정부는 헌법을 수정하여 1990년 6월부터 다수정당 선거제도를 허용하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공산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올란바토르의 유권자들은 다른 정당에 많은 지지를 보냈으나 외곽의 시골지역에서는 공산당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공산당에서는 여러 명 의 젊은 민주주의 자들과 힘을 나누겠다고 발표하였다. 언론, 종교, 집회의 자유가 모두 보장되었다. 4년 후 1996년 6월30일 선거에서 몽골민주연합은 뜻밖에도 집권 몽골공산당(MPRP)을 참패시키고 75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공산정권에 종지부를 찍었다.

주요 여행지

울란바토르

외국인들에게는 UB라고 불리는 몽골의 조용한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이제는 한물간 1950년대 유럽풍의 도시형태와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구 소련제 자동차와 버스들은 서서히 새로운 일제 자동차와 버스로 교체되고 있지만 여전히 소들이 거리를 거닐고 염소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척이며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와 여자들이  몽골의 벼락부자들과 거리를 함께 거닌다.툴(Tuul)강을 따라 세워졌으며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인 울란바토르는 공산국가형식의 고층아파트건물이 있는가 하면 약 250,000명의 지역주민이 도시주변의 확장된 게르가 밀집한 교외지역에 살고 있다. 펠트천으로 만들어진 게르는 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가지고 있어 특히 봄철에 심한 바람을 막아준다. 지형 상으로 산중턱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기에 매우 좋으나 겨울철에는 공해로 인해 보기 어려우며 기온이 상당히 내려간다. 도시의 중심은  수헤바타르(Sukhbaatar) 광장이다. 이곳에서부터 1921년 혁명의 영웅인 뎀디니수헤바타르(Damdiny Sukhbaatar)가 중국으로부터 몽골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 광장은 또한 1989년 결과적으로 공산주의를 무너뜨렸던 집회의 첫 번째 장소이기도 한다. 평상시에 이곳은 조용한 곳으로 비둘기와 3류 사진사들만이 배회하고 있다. 회색의 주 의회건물이 광장을 마주하고있고  높이가 높은 현대적인 문화의 궁정(Palace of Culture)은 유용한 건물로서 인상적인 몽골아트겔러리와 다른 몽골문화에 관련된 전시물들이 있다.

광장에서 한 블록 북서쪽에 있는 자연사박물관(Museum of Natural History)은 만약 시골로 가려면 한번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이곳에는 몽골의 지리, 동물, 식물 에 관해 것들이 전시되어 있고, 최근의 몽골역사에 대한 전시물도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2개의 공룡 뼈로서 고비에서 발굴된 것이며  고기를 먹는 거대한타보사우르스(Tarbosaurus)와 이것의 첫 번째 사촌으로서 오리너구리 부리를 가진  초목을 먹는 작은 사우로포스(Saurolophus)이다. 자나바자르 미술박물관(The Zanabazar Museum of Fine arts)에는 회화, 조각에 관련된 훌륭한작품들이 전시되어있고 이중에는 존경받는 조각가, 예술가 그리고 승려, 자나바자르들의 작품도 포함되어있다. 또한 탕카스(tangkas; cloth painting)와 불상 등과 같이 보기 힘든 종교적 색채의 전시물들이 있다

19세기가 시작될 무렵 100여 개 이상의 티벳 불교 썸(sum; 사원)과 키이드(khiid; 수도원)가  50,000명 이상의 울란바토르의 신자들을 위해 헌신하였다. 대부분의 사원과 수도원 및 그것들에 속한 소유물들은 1930년대 후반에 스탈린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 의한 숙청작업으로 모두 파괴되었다. 간단테친렌 키이드(Gandantegchinlen Khiid)는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 하에 파괴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 대략적인 의미로 ' 완전한 즐거움을 위한 최상의 장소'인 간단(Gandan)은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볼만한  관광지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는 금과 은으로 장식된 웅장한 사원이 여러 개 있다. 이곳에 사는 150명 이상의 승려들이 많은 찬불과 의식을 행하며 사원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복트칸(Bogd Khaan)의 겨울별궁(Winter Palace) 역시 가 볼만한 곳이다 1893년과 1903년 사이에 세워진 이곳은 몽골의 8번째 복트칸(살아있는 부처)과 마지막 왕이 20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어떤 역사책을 보는 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복트칸은 육식과 술등의 불경스러운 즐거움에 취해있었고 매독으로 맹인이 되었다고 쓰인 역사서가 있는가 하면 그가 신통한 예언자였으며 민족주의자라고 쓰인 역사서가 있다. 그가 1924년 죽었을 때 소련이 이끌던 몽골의 공산당은 그를 대신하는 어떠한 사람도 나오지 못하게 금지하여 몽골의 불교지도자는 더 이상 나타나지 못하게 되었다. 겨울별궁에는 6개의 사원이 있으며 복트칸에게 바친 선물들이 수집되어있고 박제한 동물들을 환상적으로 세워놓은 곳도 이곳에 있다.

가. 간단사원

ㅇ 1838년 제5대 보그드한(Bogda khan : 왕조의 사원중 가장 역사가 깊은 사원으로서 사회주의시대 종교의 박해로 그 기능을 상실했다가 90년 민주화 이후 민족문화의 부흥운동과 함께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복원

ㅇ 관음대불 : 관음대불전내에 위치한 높이 26m의 대형 불상(사회주의시절 파괴되었으나,1997년 현위치에 복원)

나. 국립역사박물관

ㅇ 1931년 인민혁명박물관으로 개관하였으며, 인류 역사 시작이래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는 4만여점 이상의 역사유물, 고고학 및 민족학 자료 소장

다. 국립자연사박물관(시내)

ㅇ 1924년 개관하였고 몽골의 자연에 관한 풍부한 전시품을 소장

- 자연과학관 : 공룡골격표본 등 동·식물, 광물자원 표본

- 고고학관 : 선사시대 이래의 석기 등 유물

- 민족관 : 징기스한 스톤 등 역사자료

라. 차강송호르(시내에서 30분)

ㅇ 1991년 징기스한을 기념하는 관광지를 몽골 전국에 설치한다는 목표하에 1차적으로 울란바타르시 근교에 Chinggis Khuree(징기스 城)이라는 관광단지를 조성.

ㅇ 1990-92년간 제작된 ‘징기스한’영화의 소품 및 이동식 ‘게르’(몽골전통 천막)를 그대로 옮겨 놓았으며, 게르 박물관에는 징기스한 군대의 갑옷, 칼, 창 등 진품 7점을 전시

ㅇ 예약으로 몽골전통예술 공연 관람 가능. (약 1시간)

마. 자이산 전망대(시내)

ㅇ 1939년 일본과의 할흐강 전쟁에 참가한 소련군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1954년 건설

바. 이태준 의사 기념공원

ㅇ 세브란스의대 1회 졸업생인 이태준 의사는 1914년 몽골에 입국하여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설립, 몽골인의 ‘화류병’치료와 대한독립운동에 매진하다가 러시아 백군에 체포되어 순국하신 분으로서 이 분을 기념하여 2001년 재몽골한인회가 몽골의 성산인 보그드산 앞에 공원을 조성

Four Holy Peaks 신성한 4봉우리

울란바토르를 둘러싸고 있는 4개의 봉우리는 신성한 것으로 여긴다. 테스트시검(Testseegum), 친겔타이(Chingeltei), 송지노카이르칸(Songino Khairkhan) 과 바얀거크(Bayansurkh)산은  나침반상의 4위치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 이러한 봉우리들은 하이킹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이고 유명한 낙엽수림, 대초원과 매력적인 조류와 아이벡스(야생염소)와 검은담비 등과 같은 동물들이 있다. 테스트시검울(Tsetseegum Uul)은 가장 장엄한 봉우리로 취급된다. 테스트시검울의 높이는 2260m(7400ft)이며 울란바토르의 남쪽을 내려다보는  복트칸울(Bogdkhan Uul)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Kharkhorin (Karakorum) 카라코람

1220년 징기스칸은 카라코람에 그의 방대한 몽골제국의 수도를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건물은 징기스칸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인 오그다이칸(Ogedai Khan)에 의해  완공은 되었으나 카라코람이 수도로서 사용된 것은 쿠빌라이칸이 지금의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40년간만 사용되었다. 수도를 옮긴 후 몽골제국은 계속해서 붕괴되었고 카라코람은 버려졌으며 나중에 약탈자들과 같은 만주족 군인 에 의해 파괴되었다. 어떤 것이든지 남아있던 것들은 16세기에 에르덴주(Erdene Zuu)수도원을 세우는데 사용되었다. 이 수도원은 스탈린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숙청작업동안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카라코람의 현대적이고 적막한 도시는 같은 장소에 세워졌다. 에르덴주(수많은 보물 이라는 뜻)는 몽골 라마교의 본산지였다. 수도원은 1586년에 짓기 시작했으나 300년 후가 되어서야 완공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60에서 100개의 사원과 외곽벽안에 위치한 300여 개의 게르가 있으며 매우 높은 곳에 있어서  1000명 이상의 승려들이 살고 있다. 카라코람과 같이 만주족의 침입으로 사원은 버려진 후 파괴되었다. 스탈린의 암살단원에 의해  에르덴주에 있는 사원 중 3곳을 제외한 모든 사원이 파괴되었고 수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승려들이 살해당했다. 수도원은 1965년에 종교적 장소로서가 아닌 박물관으로 다시 개방할 때까지 문을 닫고 있었다. 공산당이 무너지고 나서야 수도원은 제 기능을 다시 시작 할 수 있었다.  

오늘날 이곳은 그전의 영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거대한 벽이 복합적으로 이곳을 둘러싸고 있고 3개의 사원 안에는 유년시절, 청년시절 그리고 성년시절의 3단계 부처 생애를 기리기 위해 헌납되어있다. 주 사원이며 중심사원은 부처의 주(Zuu of Buddha)라 불리며 어릴 때의 부처 상이 있다. 수도원 벽의 외곽은 2개의 '거북 돌'이다. 이것들 중 4개는 한때 고대 카라코람의 경계를 나타내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남근형태의 돌로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는 수도원을 내려다 보고있는 언덕중의 작은 계곡사이에 숨겨져 있다. 이 돌을 보고 온 모든 여자는 24시간 내에 성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그 지방의 전설이 있다.

카라코란은 울란바토르에서 남서쪽으로 370km(230mi) 떨어져 있다. 7월에서 9월까지는 도시사이를 운항하는 비행기가 일주일에 여러 번 있다. 년 중 운행하는 버스는 7-8시간 정도 걸리며 자주 있는 편이다.

Khovsgol Nuur 홉스굴누르

2760sq km(1080 sq mi)넓이에 물이 너무나 깨끗해서 마실 수 도 있는 고산지대호수를 상상해 보아라 그리고 나서 2000m(6560ft)높이를 가진 많은 산과 무성한 소나무 숲 과 싱싱한 목초지 와 그곳에 방목하여 기르는 야크 와 말을 상상해 보아라 그러면 심장이 멎도록 웅장한 몽골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가진  홉스굴누르(Khovsgol Nuur)에 대한 막연한 느낌을 가진 것이다. 이곳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며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상수원지역이다. 러시아와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는 이 호수는 이곳을 '어머니'로 취급하는 지역 몽골인들 에게 신성시되고 있다. 이곳은 물고기로 가득 차 있고 주위에는 양, 아이벡스, 공, 무스, 200여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호수주위에는 안내자 없이는 찾기 힘들지만 수많은 동굴이 있다. 이 지역에는  다크해드몽골족(Darkhad Mongols), 부리아트족(Buryats) 과 타스탄(Tsaatan)와 같이 3개의 독립된 종족들이 살고 있다. 경탄할 만한 90개의 강이 호수로 흘러들어 오지만 한 개의 강만이 호수에서 흘러 나간다.  에진골(Egiin Gol)이 그것으로 최종적으로 시베리아의 바이칼호(Baikal)에 다다른다. 홉스굴누르는 겨울에 얼고, 그 때문에 시베리아에서 가로질러 오는 연료를 운반하기 위한 거대한 도로로 사용된다. 이 호수가 녹았을 때 방문객들을 카약을 즐길 수 있고 그 주변에서는 하이킹이나. 말타기(또는 야크타기)를 즐길 수 있다.

홉스굴누르의 남부 경계는 울란바토르에서 775km(480mi) 북서쪽으로 떨어져 있고 임시항공기나 버스 또는 지프를 손수 운전하여 갈 수 있다. 이곳을 방문하기 위한 최적의 시간은 춥고 호수가 얼어있기는 하지만 봉(4월부터 5월까지)이다. 여름(7월과 8월)은 따뜻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호수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허가가 필요하다. 허가는 카트갈(Khatgal)시의 남쪽입구에 도착하기 몇 킬로미터 전에 있는 홉스굴누르 국립공원으로 가는 주도로에서 얻을 수 있다.

ㅇ몽골인들의 유목은 주로 계절 따라 크게 네 차례 이동을 한다. 봄과 가을의 목초지는 서로 근처에 있고 여름과 겨울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다. 겨울을 나는 목초지는 물이 없는 지역을 골라 판자를 쳐서 주위를 둘러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고 지붕도 만들어 눈으로 부 터 가축들을 보호한다. 물이 없는 지역으로 정하는 이유는 주위에 물이 있으면 다른 지역의 가축들이 물을 먹으러 와서 주위의 풀까지 먹고 가기 때문에 물이 없는 곳으로 정하는 것이다. 물은 겨울동안 천지에 깔린 눈으로 해결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름은 풀이 무성히 자라는 시기라 이때 가축들을 배불리 먹여 살을 찌우기 위하여 자주 가까운 거리를 이동한다. 그리고 남는 일손은 8월부터 겨울날 준비를 하기 위하여 건초를 장만하러 한 달이 넘게 달구지를 가지고 집을 나선다. 한 달이 넘는 기간동안 가능한 많은 건초를 장만하지 않으면 길고 혹독한 몽골의 추위에 가축들이 생존의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몽골 인들의 유목은 정처 없이 가축들을 몰고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반경 40킬로미터 내외에서 이루어진다. 가축이 많을 경우라도 이 거리를 넘지는 않는다. 개인들의 목초지는 법으로 정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 묵시적인 약속에 의하여 정해진다. 우선 타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은 주위의 형세를 파악하고 물과 풀의 상태와 민가들의 분포상황을 완전히 알고 방묵을 시작하여야 한다. 몽골은 지형에 맞는 가장 이상적인 가축의 수는 약 1억 마리까지로 산정되고 있다. 그러나 인구의 부족으로 인하여 그 3분의 1정도에 미치는 적은 수가 방목되고 있기 때문에 목초지를 가지고 서로 분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몽골인들의 이동생활에 적합한 전통 가옥인 게르는 양털을 누벼 물이 새지 않도록 단단하게 만들어 졌으며 보통 한 가구가 3채의 게르를 친다. 성인용, 어린이용, 그리고 창고용으로 이용한다. 이동을 위하여 철거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이고 설치를 하는 시간은 3시간 정도 필요하다. 물론 전문가의 경우에 해당하고 혼자서 하는 경우는 이것의 몇 배의 시간이 들어간다. 양이나 염소는 우리 안에 가두어 밤을 나고 소나 말은 풀어서 방목을 한다. 아침에 모두 모아 와서 물을 먹이고 젖 을 짠 다음 다시 풀어준다. 아침에 가축들을 모아오는 일은 남자들의 일이고 젖은 여자들이 짠다. 젖을 짜기 전에는 반드시 새끼에게 먼저 젖을 물리고 나서 젖을 짠다. 처음 짠 젖은 동쪽 하늘을 향하여 세 번 국자로 뿌려 하늘에 바치는 의식을 거행한다.

ㅇ몽골은 한국과는 달리 목축국가이다. 목축이라는 말은 유럽의 낙농국가와는 달리 가축을 몰고 이동을 하는 생활을 말한다. 몽골 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가축의 개념과는 판이하게 다른 묵 축을 하고 있다. 우선 몽골 인들에게 몽골에는 가축이 몇 마리나 되느냐? 라는 질문을 하면 몽골 인들은 3,500만 마리의 가축이 있다고 대답을 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축의 수와는 전혀 다른 숫자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유는 몽골 인들에게 가축이라 함은 5종 가축( 소, 말, 양, 염소, 낙타) 이외에는 가축이 아니다. 즉. 돼지, 사슴 등은 이 대답한 수에 포함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돼지도 기르고 심지어 사슴이나 순록을 치며 사는 특수한 부족들도 있지만, 이들이 기르는 것들은 몽골 인들에게는 단순한 동물에 불과한 것이다. 몽골인들에게 부의 개념은 얼마나 많은 가축을 소유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천마지기 만마지기 하는 식으로 천 마리 이상의 가축을 소유한 민가는 매우 부자로 취급을 받고 또한 열심히 일하여 가축의 수가 천 마리가 넘게 되면 이를 기념하기 위한 축제가 벌어지기도 한다. 보통 과거에는 소 한 마리와 말은 동급의 가치로 취급을 받고 양이나 염소 8마리가 소 한 마리와 같은 가치로 취급이 되었다. 이는 세금의 기준이었기에 실지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가축의 수가 200마리 이상이면 살만한 사람이고 100마리가 안되면 삶이 조금 힘든 사람들이다.

게르

ㅇ몽골 인들의 전통가옥을 게르(Ger)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파오(Bao)라고 부른다.

이 게르는 유목생활을 위한 설치와 철거가 매우 간단하며 겉의 재질은 양털을 누벼 만든 ‘팰트’라고 불리 우는 두꺼운 천이고, 안에는 ‘한’이라고 부르는 가는 나무를 마름모 모양으로 엮어 만들어 이것으로 벽을 만들고, 지붕은 마치 나무로 된 큰 우산살 같은 것을 펼쳐 가운데 버팀목을 댄 것이다. 설치는 숙련자의 경우 3시간 정도면 설치가 된다. 물론 철거는 더 간단하다. 게르의 규모는 ‘한’(나무 벽의 수)에 따라 다르다. 보통 4개에서 5개의 ‘한’으로 이루어지는데, 직경 4미터 정도이고 문은 항상 남쪽을 향하게 설치를 한다. 이 민가를 방문하여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으로 가서 앉는다. 몽골 인들의 풍습은 문에 들어가 왼쪽이 방문객의 자리이다. 오른쪽은 집 안주인의 자리, 즉 주방이 되는 곳이고 문에 들어가 정면은 집 주인장의 자리이다. 가운데 지붕을 바치고 있는 나무기둥 앞에는 화로가 있고 그 화로 위에는 언제나 차나 우유가 담긴 솥이 올려져 있다. 한국 사람들 중에 종종 몽골의 민가에 들어가 화로에 피고 있던 담배꽁초 등 휴지를 화로에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집 주인에게 큰 실례를 하는 행동이기에 각별히 유의하여야 한다. 그 집의 기운은 아궁이에 있듯이 몽골 인들의 집의 길흉화복에 화로의 화신이 많은 비중을 담당하고 있다고 몽골 인들이 믿고 있다. 그리고 몽골민가를 방문하면 주인이 맛을 보라고 주는 음식은 그냥 내려놓으면 안 되고 반드시 맛을 보고 내려놓아야 한다. 현지인들이 대접하고자 하는 음식들이 냄새가 나고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인상을 찌푸리지 말고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손님답게 이들의 호의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집에 있을 때 낯선 사람이 찾아와 집에 들어가 구경 좀 하자고 하면 우리의 태도는 어떠할지를 생각하면서 이들의 미풍양속을 부러워해야 할 것이다. 아파트는 1960년대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나, 아직까지 몽골인들의 아파트 거주율은 40% 수준으로, 대다수 국민이 게르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수도인 울란바타르 시에도 외곽지역마다 대규모의 판자촌과 게르 촌이 형성되어 있다.

ㅇ우리가 일반적으로 몽골 인들의 주식은 유목민들이기에 쉽게 육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몽골 인들은 언제나 소, 양, 말 등의 가축에서 나오는 유제품을 항상 섭취하고 있고 음식의 으뜸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바로 이 유제품이 이들의 주식이 되고 있다.

몽골인들이 이처럼 유제품과 육식을 주로 하기 때문에 몽골을 여행할 때 음식으로 인한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채소를 섭취하지 않기 때문에 봄이 되면 몽골 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 된다. 비타민과 기타 필수 영양소의 부족으로 이 기간 사망률도 높고 건강에 많은 악영향을 미치는 시기이다. 그리고 몽골 인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방 배가 고파지고 영양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몽골의 고양이에게 물고기를 주면 먹지 않는다. 난생 처음 본 물건을 대하듯 고양이가 물고기를 어색하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친다. 한국인들의 의식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것이다. 유제품은 종류가 너무나 다양하기에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지만, 간단하게 몇 종류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다.

유제품류

- 뱌슬락 : 몽골 전통 치즈인데, 짠맛이 없고 서양 치즈보다 약간 단단하다.

- 으름 : 우유를 끓일 때 맨 위에 뜨는 유지를 굳혀서 만든다.

- 아롤 : 으름을 만든 뒤 남은 우유를 다시 끓여 으름처럼 굳혀 만든다.

- 수태차 : 우유와 찻잎을 같이 넣고 끓여 만든 차로 몽골 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식품이다. 한국인의 보리차와 같은 개념이다.

- 쉬민 아리흐 : 우유를 증류시켜 발효하여 만든 술로 도수가 약하나 많이 마시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센 술이다.

- 타락 : 몽골식 요구르트이다.

- 아이락 : 마유주라고도 하며, 말 젖을 가죽 푸대에 넣고 막대기로 1500-3000번 정도 저어 발효가 되면 그 다음날 이용한다. 일부 시골 어른들은 여름이 되면 다른 것은 먹지 않고 이 아이락만 하루에 10-15리터 마시며 생활을 한다. 6월부터 10월까지만 생산이 되고 남쪽의 고비사막지역의 마유주를 최고의 제품으로 여기고 있다. 몸속의 나쁜 찌꺼기를 씻어 준다고 하여, 마유주로 치료를 하는 요양소도 많이 있다. 처음 마시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설사를 하는데, 몽골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장이 청소되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해석한다.

육류

ㅇ몽골 인들에게 고기는 혹독한 자연환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식량이다. 몽골 인들은 보통 하루에 일인당 200그램의 고기를 섭취한다. 불에 굽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고 물에 소금을 넣고 삶아서 먹는다. 주로 소고기와 양고기를 몽골 인들은 즐겨 먹는다.

- 보쯔- 귀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이 되면 우리의 고기만두와 비슷한 보쯔라는 만두를 빚어 먹는데 몽골의 설날에는 이 보쯔를 1500-3000개 정도 빚는다. 이 보쯔라는 말의 기원은 중국어의 ‘빠오즈(둘러 싼 물건)’이라는 말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 호쇼르- 손바닥만한 크기의 튀김만두로 종종 집에서 만들어 먹거나 사먹기도 한다. 이는 몽골 인들이 점심에 차와 함께 먹는 중요한 음식이다. 주로 쇠고기로 만들고 한국인들의 입에도 맞는 음식이다.

- 버르츠- 우리의 육포로 생각하면 된다. 겨울에 고기를 손가락 3개 정도 합한 두께로 잘라 말린 다음 해가 바뀌고 봄이 오면 이것을 차에 넣어 먹거나 국에 넣어 먹는다. 봄에 몽골 인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기도 하고 멀리 떨어진 목초지로 이동할 때 주로 상용한다.

- 버덕- 주로 염소를 이용하여 만든다. 몽골의 진정한 전통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만드는 방법이 매우 까다 로와 특별히 따로 기술자가 있어야 맛을 볼 수 있는 요리이다. 만드는 방법은 우선 염소의 머리를 잘라 그 안으로 손을 넣어 뼈를 발라 가죽이 상하지 않도록 꺼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뜨겁게 달군 돌을 넣고는 공기가 새지 않도록 잘 묵으면 된다. 겉의 털은 고기가 익으면 스스로 빠져 떨어진다. 다 만들어진 버덕은 보기에 흉칙하지만 맛이 좋고 특유의 노린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야외에서 외국인들에게 주로 대접하는 요리이다. 보통 3-4시간 정도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인내력이 필요한 요리이다.

- 허르헉- 뜨겁게 달군 돌을 이용하는 점에서 버덕과 비슷한 요리이지만 더 손쉽고 양고기로 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선 양을 잡는 방법부터 다르다. 우리 안에 있는 양을 고른 다음 산채로 양의 배를 10cm정도 가르고 손을 집어넣어 폐동맥을 손가락으로 끊는다. 삼  사분이 경과하여 양 숨이 넘어가면 조심스럽게 양의 가죽을 벗긴다. 그리고 양의 가죽을 펼치고는 그 위에서 양을 조각조각 각을 뜬다. 이 때 양의 가슴 안에는 심장에서 나온 피가 가득 고여 있는데 이를 그릇에 담아 내장에 넣고 삶아 피 순대를 만들어 먹는다. 내장들은 모두 삶아 먹는데 한국인들이 와서 이 때 양의 생간을 먹는 것을 몽골 인들이 보고는 기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이고기 조각들을 양철통에 달군 돌과 함께 차곡차곡 넣고는 뚜껑을 닫고 김이 새지 않도록 잘 닫는다. 이때 양파나 마늘 등 한국인들의 입맛에 맛 게 양념을 가미할 수 있다. 뚜껑이 완전히 닫히고 40분 정도 있으면 달군 돌이 고기를 맛있게 익혀준다. 특이한 점은 이 고기를 익힌 돌을 나중에 꺼내 손바닥에 쥐고 있으면 혈압과 심장 등 몸에 좋다고 여기고 있다. 이 돌들은 고기를 익히고 나서도 손에 쥐고 있기 힘들 정도로 뜨겁다. 몽골 인들은 짐승의 뼈를 절대로 자르지 않고 관절을 꺾어 해체를 한다. 또한 가축을 잡을 때 되도록 빨리 숨이 넘어가도록 하고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심한 욕을 먹는다.

(1) 모자-말개에

ㅇ몽골사람들은 여우가죽과 비단 천을 함께 이용한 모자를 즐겨 사용하였다. 긴 겨울과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살아가는 몽골 인들은 모자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모자를 중요하게 여기 기 보단 머리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모자에 관련된 몽골 인들의 풍습은 매우 다양하고 재미있다. 모자를 뒤집어 놓지 않는다. 항상 똑바로 놓은 곳에 둔다. 행여나 모자가 뒤집혀지면 질색을 하곤 다시 바르게 놓는다. 이유는 죽은 사람의 모자라는 뜻이다. 또한 모자를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는다. 사람의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해주는 모자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는 주위 사람들에게 심한 눈치를 받는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모자를 두게 겹쳐 쓰면 결혼을 두 번 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몽골 인들은 모자를 두개 겹쳐 쓰지 않고 있다. 그리고 길에 떨어진 모자는 아무리 고가의 것일지라도 절대로 줍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몽골 인들은 전등갓이나 모자처럼 뚜껑이 아래로 향한 물건들은 서로 선물을 하지도 않거니와 그냥 주지도 않는다. 몽골사람들은 모자를 항상 놓은 곳에다가 둔다. 어느 장소를 가든지 그곳에는 항상 모자를 걸어두는 곳이 있으며 방문자는 인사를 나눔과 동시에 모자를 벗어 걸어두고는 자리에 앉는다. 현대의 몽골 인들은 과거 자신들이 사용했던 모자대신 러시아의 밍크 모자를 더 선호하여 겨울이 되면 이곳 몽골은 검은색의 밍크모자로 물결을 이루고 있다. 이 밍크모자는 백화점이나 일반 상점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고 다른 곳과의 가격차이가 많이 나지 않기 때문에 맘에 드는 물건이 있거나 구매를 원하면 그 자리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을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이곳 몽골은 자신의 신체 크기에 맞거나 또한 맘에 드는 색상이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다량으로 구매를 하고자 하면 이곳의 자유시장에 가면 된다. 그러나 반드시 가이드와 동행을 해야 한다.

(2) 의상-델

ㅇ몽골 인들의 전통의상은 델이라고 부른다. 이 델은 원래 남녀의 구분이 없던 것으로 요즘은 색상으로 남· 녀 복의 구분을 하지만 원래 허리띠로 구분을 한다. 남자들은 전통의상인 델을 입고 4미터정도 되는 굵은 천은 허리에 감는다. 이 허리띠에 남자들은 단검과 부싯돌 그리고 기타 장식물을 두른다. 가장 친한 친구와 이 허리띠를 교환하며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잠을 잘 때 허리띠는 풀어 반드시 머리맡에 두거나 잘 접어서 놓은 곳에 놓고 잔다. 여자들은 허리띠가 가는 한 줄로 되어있다. 사실 일이 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처럼 굵은 허리띠를 한다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몽골어에도 남자들을 부스테(허리띠가 있는), 여자들은 부스구이(허리띠가 없는)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로 허리띠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몽골 델의 옷깃은 만주의 영향을 받아 매우 흡사한 형태로 바뀌었다. 원래는 우리의 것과 비슷한 옷깃을 가지고 있었으나 청의 지배시기 옷깃이 중국스타일로 변형이 되었다. 그리고 소매가 길어 접어서 사용하고 윗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받을 때는 반드시 접은 소매를 내린다. 몽골 인들은 주머니가 따로 없는 이 델의 품속에 거의 모든 물건을 넣고 다닌다. 외국인들은 한없이 물건이 들어가는 몽골의 델을 보고는 신기하게 생각한다. 혹독한 추위의 몽골 겨울에는 야생산양을 사냥하여 그 가죽으로 델을 만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무스탕의 일종인 것이다. 무게가 많이 나가지만 매서운 추위를 이기게 해주는 옷이다. 지금은 이 야생산양을 사냥하기 힘들기에 새로이 만들어 입기 힘이 들고, 또한 이 동물은 몽골의 서쪽 알타이산맥에 주로 서식을 하고 있기에 동쪽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구하기 힘든 옷이 되었다. 사회주의 시절 민족문화 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이 전통의상은 몽골의 기후와 지형에 너무나 적합하기에 특히 지방에 사는 민중들이 서양식의 옷을 선호하기보다는 이 델을 선호하였다. 정부에서는 한 때 모든 정부 관련기관에 이 델을 입고 출입하는 것을 금지시켰지만 몽골 인들은 민주화 이후 이 델을 몽골의 공식의상처럼 외국의 국빈들에게 입히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3) 신발-고탈

ㅇ한국인들 중에 몽골의 몽골씨름을 관심 있게 본 사람이라면 선수들이 재미있는 매 춤추며 이상하게 생긴 신발을 신고 등장하는 장면이 생각이 날 것이다. 이 굽이 없고 신의 코가 위로 올라와 있는 우스꽝스러운 신발은 고탈 이라는 몽골의 전통 신발이다. 이 고탈 을 신을 때 양말을 신고 신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발싸개라는 긴 천으로 발을 둘둘 말아 싼 다음 신을 신는다. 몽골 인들이 이 재미있는 모양의 신을 만든 이유는 추위를 막고 말의 등자에 발을 넣을 때 아무런 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한 몽골 인들의 지혜가 담겨있다고 한다. 즉 유사시 어느 상황이든 말에 오르기 위한 순수 기마 민족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학자들은 두꺼운 통가죽으로 만든 이 신은 청나라 지배 시 반청분자들을 쉽게 굴복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청의 조정에서 장려하였다는 설도 있다. 그 이유는 굽이 없고 매우 무겁기 때문에 오히려 맨땅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가죽부츠가 유행을 하여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지방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되었다. 기념품상점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가격은 품질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50불 이내로 구할 수 있다.

초, 중 고등학교(몽골 사립학교, 러시아학교, 중국학교)는 약 월 100$ 정도면 가능.

- 유치원(3-6세) 초, 중등교육(7-16세) 고등교육(17세 이상)

- 초, 중등교육학제 : 10학년제 (학기는 9월에 시작하여 6월에 끝난다)

- 초등교육(의무교육) : 6년으로 전국에 683개 초등학교가 있음.

- 중, 고등교육 : 4년

- 대학교육 : 4년 (대학교, 기술학교, 직업학교)

International School

국제학교(미국계)로서 초등학교, 중학교 수학가능하며 고등학교 과정도 있으나 국제공인을 받지 못한다. 학비 년 8.000$정도 (초등학교나 중학교 수업료는 별 차이가 없다.)

울란바타르 MK학교

한국인 선교사들이 현지 몽골에서 운영하는 울란바타르 MK학교(유치원, 초등학교)는 50%는 영어로, 50%는 한국어로 진행되는데 월 수업료는 유치원이 80$. 초등학교 150$이다. 형제가 2명 다닐 경우 20%할인된다.

대학교

국립대로 몽골국립대학, 과학기술대학, 사범대학, 상공대학, 경제대학, 의과대학, 농업대학, 직업학교 등이 있고 울란바타르 대학, 국제대학 등 사립대학을 포함하여 울란바타르 시내에 현재 대학교가 100개 이상이 있다.

몽골국립대학교(32-1402), 인문대학교(32-2072), 한국인이 운영하는 울란바타르 대학교(45-0179), 후래정보통신대학교(31-8530), 몽골국제대학교(MIU) 정도가 유학가능하다.

-입학요건 : 학교에서 면접 및 입학시험을 실시

-학제 : 4년제 (몽골대학생 학비 년 간 300-400$)

-외국인 언어과정 1년 : 년 1,800$이고 기숙사비는 월 50$이다.

기타 참고사항(종교, 풍속, 법규, 관습관련 유의사항)

• 정식국명은 몽골이며, 영어로는 몽골리아(Mongolia)임.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식 표기 몽고(蒙古-몽매한 야만인)는 거부감을 일으키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음.

• 7.11-13간 '나담'(축제)행사가 개최되며 씨름, 활쏘기, 말경기를 함.

• 한국과 마찬가지로 몽골에서도 '차강사르'(음력설)를 지냄.

• 몽골사람은 도살할 가축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때문에 사람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면 큰 실례가 되므로 반드시 손바닥을 위로 펴서 가리켜야 함.

• 몽골에서 식탁을 두드리는 것은 생사를 결정하는 싸움을 신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함.

• 어린애들이 귀엽다고 엉덩이 또는 어깨를 두드리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함.

• 몽골 국민은 대체적으로 외국인에게 호의적이기는 하나 개방이후 수도권에서 외국인을 많이 접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외국인들에게 여러 가지 수법을 동원 사기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 요함.

• 종교는 불교(라마교)가 일반적이나 중동 회교 국가처럼 특별히 종교 관습 또는 종교법에 의해 외국인의 일상생활 및 행동을 통제하는 경우는 없음.

• 노천 야외시장 "자흐"에서 몽골인들의 상거래 상황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할 경우 가끔 돌을 던지는 경우도 있고, 일부 젊은이들이 시비를 걸거나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으므로 주의를 요함.

• 출입국시 세관신고서에 외환 신고를 정확하게 해야 하며 출국시 신고액 이상의 외환을 소지했을 경우 압수당할 수도 있음.

• 아국인 여행객중 녹용, 웅담, 사향, 호랑이나 곰 가죽, 공룡알 등을 구입하여 반출하려다 공항 세관에서 적발되어 압수당하는 경우가 있음.

• 골동품의 경우 ART SHOP 등에서 구입하고 관계 기관에서 반출 허가서를 받아야 공항 세관 통과 가능

• 화물로 발송한 짐표(좌석표 배부시 여행사 직원이 비행기표에 부착해 줌)는 몽골에 도착해서 짐을 찾아 공항문을 나설 때 공항직원이 회수하므로 잘 보관해 두어야 함.

□ 몽골 목민 가정 방문 때 주의 사항

o 왼손으로 문을 열고 오른발부터 들어간다.

o 들어갈 때 문지방을 밟으면 안 된다.

o 문짝이 둘일 때 들어가면서 오른손으로 문을 잡아서는 안 된다.

o 몽골전통집인 게르에 들어가고 나올 때 고개를 숙인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를 부딯쳐서 다칠 수 있다.

o 집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o 집주인이 좌석지정을 해 주지 않으면 들어가서 남성은 왼쪽으로, 여성은 오른쪽에 앉는다. 만약 오른쪽에 공간이 없으면 왼쪽에 앉는다.

o 연장자나 인솔자가 상석에 앉는다.

o 가정방문 때 차나 마유주를 대접받는데, 이를 거절해서는 안 되며, 맛을 본 뒤 내려놓아도 된다.

o 유제품 등의 먹거리를 접시에 담아서 내면 손을 대서 맛을 봐야 한다.

o 코담배로 인사를 청하면 조심스럽게 오른손으로 받아서 향을 맡은 후 뚜껑을 살짝 연 채로 돌려준다.

  만약 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옆사람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o 차나 마유주가 든 그릇을 바닥에 놓아서는 안 된다.

o 가정방문시 미처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선물하거나 집주인과 담배로 인사를 주고 받아도 된다.

□ 가정방문시 금기 사항

o 기둥에 기대고 서거나 앉기

o 두 기둥 사이로 지나다니기

o 문 정가운데에 서기

o 화로에 쓰레기 버리기

o 연장자의 면전으로 지나가기

o 물건을 받을 때 왼손으로 잡기  (반드시 오른손으로 주고 받을 것)

o 타인의 모자 써보기  (만약 써볼 경우 모자 안쪽에 침을 2-3번 뱉고 써 볼것)

o 손님들끼리 외국어로 오래 말하기

o 칼로 사물을 지칭하기

o 불을 향하여 발뻗고 앉기

몽골인 가정을 방문할 경우에는 하찮은 것이라도 반드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예의다. 대개 보드카 1병과 초콜렛이나 사탕 정도면 된다. 그러나, 상대방의 부인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을 때는 화장품 정도가 괜찮다. 설사, 시간이 없고 가게가 문을 닫아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돈을 주는 것도 일반화 되어있다 (깨끗한 돈으로 2,000 투그릭 정도면 알맞음). 집에 들어가서는 식구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부터 ‘사잉 밴오?’(안녕하세요) 라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면 된다.(명절날은 다름) 그리고, 주인이 권하는 자리에 앉아 주인이 권하는 수태차를 받는다. 가끔 몽골인들은 외국인이 불편할 까봐 신발을 신고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나 벗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이다.(아파트나 목조건물 등에서)

※ 몽골 게르(겔) 방문 시 다음 사항에 주의해야 한다.

  ①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인사말을 한다.

  ② 중앙의 난로 옆에 좌우로 2개의 기둥이 나란히 놓여있는데 왼쪽 기둥의 바깥쪽에 서서 주인이 권하는 자리에 앉는다. 두 기둥사이로는 오고 가고 할 수가 없다.

  ③ 자리에 앉아서는 그들이 주는 수태차를 정중하게 두 손으로 받아 마신다.

  ④ 용무가 끝나고 나올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뒤로 되돌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앞쪽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 나와야 한다.

  ⑤ 절대 문지방을 밟아서는 안 된다.

  ⑥ 인사말을 한다.

      * 명절날에는 인사할 때 서로가 팔을 벌리고 껴안으며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의 뺨에 자기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2번 정도 마신다.

시간관념

  몽골인들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별로 없다. 보통 30분 정도 늦는 것에 별로 미안해하지 않는다. 이는 급할 것이 없는 민족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우리마저 그럴 수는 없는 일로써 그들에게 무언가를 느낄 수 있도록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켜주는 것이 좋다.

검지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지 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리킬 때 검지손가락을 사용하는데 이는 몽골에서는 대단히 실례되는 행동으로써,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인 모르게 이러한 행동을 했다면 즉시 사과를 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 무언가를 가리킬 때는 손바닥을 펴서 가리킨다.

음주예절

몽골인들은 손님이 오면 항상 준비해둔 보드카 및 여름철에 시골에서 가져온 마유주(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서 막걸리와 비슷한 맛임) 등을 권하는데 보드카는 조그만 잔을 이용하지만 마유주는 커다란 대접에다 가득 담아 준다. 술을 주고받을 때는 보드카의 경우 차를 마실 때와 같이 왼손바닥으로 오른 팔꿈치를 받쳐 잡으며 오른 손가락을 모아 술잔을 받으면 되고 마유주는 대접에다 주므로 두손으로 대접을 받으면 된다. 마유주는 처음 마시면 대개 설사를 하게 되는데 위장을 깨끗이 해준다고 하며 설사 후에는 몸이 아주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마유주를 마시면 별로 취하지는 않고 배가 불러오는데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 또한 보드카나 몽골 아르히 등을 마실 때에는 왼손으로 술잔을 잡고 오른손의 네번째 손가락을 술에 대어 술을 묻힌 다음 얼굴 앞으로 갖다대어 먼저 하늘을 향해 엄지손가락으로 튀기고 다음엔 앞을 향해 그리고는 땅을 향해 튀긴 다음 입에다 갖다대는 것이 예의인데 마유주를 마실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는 하늘과 땅에 감사하고 또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몽골인들은 술을 마실 때 끊임없이 술을 권한다. 그렇다고 다 받아 마실 수는 없으므로 보드카의 경우는 조금만 입에 대어 예의를 표하고 술을 못한다고 정중하게 얘기를 하면 괜찮은데 마유주는 약하므로 최소한 1 대접 정도는 마셔야 한다. 몽골인들 얘기로는 술을 받을 때 3잔까지는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 예의라고 하지만 적당한 핑계를 대고 정중히 거절하면 된다. 또한 한국은 술잔을 완전히 비우면 술을 따르지만 몽골에서는 술잔이 조금만 비워도 술을 따른다. 참고로, 몽골인들은 보드카나 마유주를 잘 받아 마시면 무척 대견스러운 듯 흡족해 하며 아주 좋아한다.

흡연

  몽골에서 흡연은 몇몇 장소를 제외하고는 가능하므로 주위를 살펴 금연표시가 없는 곳에서 피는 것이 좋다. 몽골 가정을 방문하다 보면 나이 드신 어른들이 있는 경우 인사를 할 때 그들은 소매춤에서 조그만 옥돌로 된 병을 꺼내어 정중히 건네준다. 이것은 하마링 타미흐(코담배)로서 두손으로 정중히 받아들어 뚜껑을 열고 뚜껑에 붙어있는 귀 청소기처럼 생긴 것을 구멍 속에 밀어 넣어 재(잎을 곱게 갈은 것)를 왼손가락 위(보통 둘째 및 넷째 손가락)에 조금 묻힌 다음 엄지손가락과 함께 비비면서 코로 들이마시면 되는데 진짜 들이 마시지 말고 시늉만 내는 것이 좋다.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대개 들이마시는데 재채기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리고는 다시 뚜껑을 닫아 정중히 두손으로 건네준다. 또한 공공기관에서 흡연 구역일지라도 옆 사람의 동의를 구한 후 피우는 것이 무난하며 손윗사람 앞에서는 담배를 되도록이면 삼간다. 이곳에서는 여성도 자유스럽게 담배를 피우며, 저항감을 표정에 담지 않도록 한다.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

  몽골에서 처음 만났거나 친하지도 않은 여자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이며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이때, 끈질기게 여자의 나이를 물어보거나 혹은 무슨 띠인지 물어보는 것은 무례한 짓이며 상대에게 여간 부담을 주는 행동이 아니다. 생일 등은 물어봐도 상관없으며 정 상대의 나이가 알고 싶으면 친숙해져서 부담이 없어지면 그때 가서 나이를 물어볼 수는 있다.

 ■ 쇼핑

  물건을 살 경우 돈을 지불하는 방법은 상점에 따라 크게 2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하나는 국영 백화점과 같이 여러 종류의 가게가 한 주인에게 속해있는 경우에는 물건을 고른 후 그 물건의 가격을 종업원으로부터 받아 직접 계산대에 가서 돈을 치르고 그 영수증을 다시 종업원에게 갖다 주어야 한다. 이때, 종업원으로부터 영수증을 받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 가지는 슈퍼나 시장과 같이 개인이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물건을 고르면서 돈을 지불하면 되는데 대형 슈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우 영수증이 없다. 몽골에서는 아무리 물건을 많이 산다해도 깎아주거나 덤으로 서비스를 주는 법이 없으므로 애석해 하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하르자흐나 텀자흐처럼 사람이 아주 많이 몰려드는 곳에 갈 때는 도둑을 맞기가 쉬우니 돈 간수를 잘해야 하며 그들과 부딪힌다 해도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낼 필요가 없다. 이곳에는 많은 몽골인들이 값싸고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 항상 장사진을 이루는데 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고 접촉이 심해 한번 갔다 오면 옷이 더러워져 빨아야 한다. 그리고, 계산시는 항상 다시 검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몽골인들은 계산할 때 거의 계산기에 의존하여 계산기가 없이는 정확한 계산이 나오지가 않는다.

 ■ 종교

① 몽골인들은 대부분 티벳 불교인 라마교를 믿으므로 타 종교와의 논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② 사원 같은 곳에 가서 내부 및 신자들이 절하는 모습 등 촬영은 가급적 삼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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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비사(元朝史) 

[명사]<책>몽골 제국의 칭기즈 칸의 생애를 중심으로 그 조상으로부터 오고타이까지의 전설(傳說)과 사실(史實)을 기록한 역사책. 13세기 중기에 완성되었고 몽골 어로 된 원본은 오늘날 전하지 않으며 명나라 홍무(洪武) 초년에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있다. 12권. 

-출처: 엠파스사전

원제:
スーパー蒼き狼と白き牝鹿 元朝秘史
Genghis Khan II: Clan of the Grey Wolf
(Super Aoki Ookami to Shiroki Meshika: Genchou Hishi)

코에이의 징기스칸 원조비사 시리즈는 열도에서 본래의 1편에 오르도와 잡다한 시스템을 추가하여 따로이 2편이란 타이틀로 출시하였다. 그리고 그 3편이 국내에는 징기스칸2편으로 소개 된 원조비사이다. 비스코에서 출시된 원조비사는 본래 고려를 플레이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도록 수정한 버전이다. 그래서 국내에선 3편의 출시가 없이, 곧 바로 4편이 출시된 것이다. 하지만 이 4편도 흥행참패(불법복사)로 코에이 전매특허(우려먹기악덕상술)인 파워업키트는 출시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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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 공략집, 매뉴얼, 징기스칸4 PK 파워업키트 한글패치, 에디터, 트레이너, 맵에디터, 자작, 유저 시나리오 등 각종 자료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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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IV PK에 새롭게 추가된 인물들의 열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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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3 장수 일람...

위료옹 1178∼1237(1178)
64 39 67 농업 문화 C D D E 화남 수명:
소속:
남송의 학자, 관인. 정무에 뛰어나 중직을 역임했다. 정주학을 연구하여『구경요의』라는 저작을 남겨, 정주학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가사도 1213∼1275(1213)
65 54 73 농업 건설 B B C D 화남 수명:3
소속:
남송 말기의 관리. 몽골군의 침입을 막은 공으로 재상이 되었다. 높은 지위에 오른 후 전횡이 심해져 몽골군에 패배하게 되자 살해되었다.

여문환 ????∼????(1231)
61 78 63 기동 돌격 A B B B 화남 수명:4
소속:
남송 말기의 장군. 남송군의 사령관으로서 5년에 걸쳐 몽골군과 싸워 양양을 지켜냈다. 후방 지원을 못 받게 되자 고립되어 항복했다.

육수부 1236∼1279(1236)
69 33 53 농업 문화 C D C E 화남 수명:4
소속:
남송 말기의 신하. 장세걸 등과 함께 몽골군에게 저항했다. 애산 싸움에서 남송군이 괴멸되자, 8세의 어린 황제를 안은 채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종 ????∼????(1202)
64 34 53 상업 문화 등용 C D D D 화남 수명:
소속:
남송의 제5대 황제. 주자학을 보호했다. 진덕수같은 진보적 사상가를 등용하여 국정을 개혁하려 했으나, 가사도같은 간신의 방해를 받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규보 1177∼1240(1177)
63 37 74 문화 외교 D D D E 한반도 수명:3
소속:
고려의 문신. 외교면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몽골군이 고려에 침입하자 오고타이 칸에게 진정서를 보내고 군대를 철수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단 ????∼1162(1190)
53 65 54 복병 B C B E 화북 수명:
소속:
금말기의 장군. 몽골군에 패하여 항복하였으나, 후에 남송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년후에 반란은 진압되었고, 포박후에 모살되었다.

이치 1192∼1279(1192)
57 24 53 상업 문화 E E E E 화북 수명:1
소속:
원 초기의 수학자. 금에서 봉직했으나 몽골군의 침입으로 금이 망하자 은둔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대수학의 분야에서 공적이 있어 『측원해경』등 저작을 남겼다.

란케이 도류 1213∼1278(1213)
65 18 48 건설 문화 외교 E E E D 일본 수명:
소속: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 남송으로 건너가 선 사상을 배웠다. 제5대 집권자인 호조 도키요리의 청을 받고, 가마쿠라에 건장사를 창건했다.『대각선사언록』이라는 저작을 남겼다.

야율초재 1190∼1244(1190)
100 34 93 농업 상업 건설 문화 외교 등용 D D D E 화북 수명:3
소속:
몽골제국의 명신. 원래는 금나라의 관리였으나 징기스 칸의 초청으로 신하가 되었다. 오고타이의 시대에는 지방의 행정 징세 제도를 확립하여 제국 발전의 기초를 구축했다.

호조 야수토키 1183∼1242(1183)
83 70 74 농업 상업 건설 돌격 복병 C B B E 일본 수명:4
소속:
호조 요시토키의 아들. 고토바 태황제의 반항 세력을 진압하여, 요시토키 사후에 제3대 집권자가 되었다. 무관집 최초의 법전「어성패식목」을 제정하는 등 뛰어난 정치 수완을 발휘했다.

호조 도키요리 1227∼1263(1227)
81 64 77 농업 문화 외교 등용 기동 B C B E 일본 수명:
소속:
가마쿠라 막부의 제5대 집권자. 호조 도키우지의 아들. 정적인 미우라 일족을 멸하고, 독재체재를 확립했다. 어진 정치에 밝아, 민정시찰을 위해 전국을 순회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호조 도키우지 1203∼1230(1203)
55 61 57 등용 C C C E 일본 수명:
소속:
호조 야수토키의 아들. 아버지와 함께 조큐의 난에서 활약했다. 호조 요시토키의 사후, 로쿠하라 탐재와 와카사 수호등의 요직을 역임하여 장래가 촉망받았으나, 28세에 병으로 죽었다.

호조 도키무네 1251∼1284(1251)
56 82 51 상업 건설 문화 돌격 연사 복병 B B A D 일본 수명:4
소속:
가마쿠라 막부의 제8대 집권자. 어릴 때부터 강직하고 과감한 성격으로 무예에 뛰어났다. 쿠빌라이 칸의 복종요구를 거절하고, 두번에 걸쳐 원의 침입을 막았다.

호조 츠네토키 1224∼1246(1224)
67 58 64 건설 외교 B C C E 일본 수명:
소속:
가마쿠라 막부의 제4대 집권자. 호조 도키우지의 아들. 장군가와의 혼인정책을 통해 집권체제를 안정시키려 하였다. 병이 중하여 동생인 도키요리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출가했다.

타이라노 요리쯔나 ????∼1293(1226)
64 36 61 상업 D D C E 일본 수명:2
소속:
가마쿠라 말기 장수. 정적인 아다치 야수모리를 멸하여 실권을 장악했으나 차남을 막부의 장군으로 옹립하려다 실패. 집권자인 호조 사다토키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문천상 1236∼1282(1236)
94 68 72 상업 문화 외교 등용 돌격 복병 B B B D 화남 수명:3
소속:
남송 마지막 승상. 남송 멸망후에도 의병을 거병하고 몽골군에게 저항했다. 몽골군에게 붙잡힌 후, 사관을 거절하여 처형되었다.

진덕수 1178∼1235(1178)
57 24 46 문화 E E E E 화남 수명:4
소속:
남송의 주자학자. 황제 이종에 의해 관리로 추거되었다. 정력적으로 정무에 힘을 기울여 많은 저작을 남겼다.「소주자」라고도 불려지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진수도 ????∼????(1175)
62 60 68 상업 C D D D 화남 수명:3
소속:
이조 베트남의 유력 제후. 진조의 창시자. 이조에서 실권을 잡자, 황제 소황을 퇴위시켜 그의 조카를 제위에 오르게 했다.

진흥도 ????∼????(1243)
55 88 74 건설 외교 돌격 연사 복병 A B C B 화남 수명:2
소속:
진조 베트남의 장군. 전술에 뛰어났다. 백등강 싸움에서 몽골군을 격파하여 베트남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했다.

진해 ????∼????(1169)
69 58 72 건설 외교 복병 C B B E 몽골 수명:
소속:
케레이트족의 장군. 징기스 칸을 모시고 몽골 통일에 공헌했다. 오고타이의 시대에는 승상으로써 정무의 중추를 담당했다.

장세걸 ????∼1279(1245)
52 84 56 기동 돌격 복병 B B A C 화남 수명:4
소속:
남송 말기의 장수. 애산 싸움에서 남송이 멸망한 후에도 재기를 꾀하여 몽골군에게 계속 저항했다. 폭풍우를 만나 익사했다.

장유 1186∼1264(1186)
73 67 65 상업 건설 외교 B C B E 화북 수명:
소속:
몽골제국의 장군. 금에 사관했다가 몽골군에게 항복하여, 각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후에 도원수가 되어, 한인 4대군벌의 하나가 되었다.

오오토모 요리야스 1222∼1300(1222)
57 61 57 등용 기동 C B B E 일본 수명:2
소속:
가마쿠라 막부의 진서 봉행. 쇼오니 수케요시와 같이 규슈 방위로 임명되고 몽골군의 침입때 싸웠다. 몽골군이 철수한 후에도 규슈 분고에 정주하여 호족이 되었다.

태종 ????∼????(1200)
66 57 53 농업 상업 B D D D 화남 수명:
소속:
진조 베트남의 초대황제. 숙부인 진수도에 의해서 옹립되었다.

쇼오니 수케요시 1198∼1281(1198)
53 65 49 공성 C C B E 일본 수명:1
소속:
가마쿠라 막부의 진서 봉행. 규슈 방위의 최고 책임자. 몽골군의 습격에 대비하여 방위군을 지휘했다. 홍안 전쟁에서 받은 상처가 원인이 되어 사망했다.

사미원 ????∼1233(1166)
68 52 56 외교 C D D E 화남 수명:3
소속:
남송의 정치가. 대 금나라 정책으로 화평파의 선봉이 되어 항전파를 물리치고 강화를 실현시켰다. 후에 승상이 되어 약 26년간 독자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사천택 1202∼1275(1202)
72 68 72 상업 외교 등용 공성 복병 B B B E 화북 수명:1
소속:
원나라 장수. 하북의 호족이었으나 일찍 몽골군에 투항했다. 쿠빌라이 칸의 신임이 두텁고 장씨 등과 함께 한인 4대 군벌을 이루었다.

미우라 야수무라 ????∼1247(1203)
54 66 53 돌격 복병 C C C E 일본 수명:
소속:
가마쿠라 중기의 무장. 호조 야수토키를 모시고 죠큐의 난에서 분전했다. 후에 제5대 집권자인 호조 도키요리에게 모반의 의심을 받아 토벌되고, 일족이 모두 자결했다.

고종 ????∼????(1195)
56 54 51 농업 C C D D 한반도 수명:
소속:
고려의 제23대 국왕. 총 6회의 몽골군의 침입을 막았다. 최씨에게 실권을 빼앗긴 괴뢰였으나, 만년에 최씨를 토벌하여 권력을 회복했다.

엄실 1182∼1240(1182)
65 66 57 기동 공성 B B B E 화북 수명:
소속:
몽골제국의 장군. 금에 사관하였다가, 징기스 칸의 배하장군인 무카리에게 항복하였다. 후에 전공으로 한인 4대군벌의 하나가 되었다.

원호문 1190∼1257(1190)
65 26 49 문화 C D D E 화북 수명:
소속:
금말기의 시인, 학자. 몽골군이 개봉을 포위하자, 금의 지식인의 구명을 청했다.『중주집』이라는 금의 국사에 관한 저작을 남겼다.

원종 ????∼????(1221)
57 56 34 농업 외교 C C D D 한반도 수명:3
소속:
고려 제24대 국왕. 몽골군의 침입으로 군벌에 의한 정권이 무너지자, 실권을 회복했다. 몽골군과 화친하여 수도를 개성으로 다시 옮겼다.

김경손 ????∼1249(1190)
43 67 49 농업 돌격 B C C C 한반도 수명:4
소속:
고려의 장군. 몽골군의 침입을 격퇴했으나 다른 중신들이 그 공을 질투하여 그는 모살되었다.

완안진화상 1192∼1231(1192)
36 95 83 기동 연사 복병 B A S E 화북 수명:4
소속:
금말기의 장군, 몽골의 맹장 수부타이의 대군 8천기를 단 4백기로 격퇴하는 등 활약했으나 패배하여 몽골군에 의해 처형되었다.

곽수경 1231∼1316(1231)
93 12 52 농업 상업 건설 외교 D E E E 화북 수명:1
소속:
원의 과학자. 중국의 과학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 혼천의를 쓴 수시력의 제정, 대운하 사업 개발 감독 등 여러 갈래에 걸친 분야에서 활약했다.

곽간 ????∼1277(1218)
64 79 82 등용 기동 연사 공성 B A A E 화북 수명:
소속:
몽골제국의 장군. 훌라구의 서아시아 원정에 종사하여, 이슬람교도나 십자군과의 전투에서 활약했다. 용병에 뛰어나「극서의 신인」이라 불리었다.

아다치 야수모리 1231∼1285(1231)
70 42 62 농업 문화 외교 D C C E 일본 수명:4
소속:
가마쿠라 장수. 평정중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딸을 호조 도키무네에게 시집보내서 외가 친척으로서 권력을 잡았으나 도키무네 사후에는 타이라노 도모쓰나와의 항쟁에 지고 일족이 모두 망했다.

아다치 카게모리 ????∼1248(1180)
62 59 68 상업 문화 복병 C C C E 일본 수명:
소속:
가마쿠라 전기의 무장. 막부 창설 이래의 미나모토씨의 중신. 제5대 집권자인 호조 도키요리의 외척으로써, 대립하던 미우라 야수무라를 도키요리와 공모하여 토멸하고 막부내의 지휘를 확립했다.

아다치 요시카게 1210∼1253(1210)
63 53 64 C C C E 일본 수명:
소속:
가마쿠라 중기의 무장. 아다치 카게모리의 아들. 아버지를 따라 제5대 집권자인 호조 도키요리를 위해 유력 어가인인 미우라 야수무라를 토벌하였다. 도키요리에게 중용되어, 막부의 요직을 맡았다.

애종 ????∼1234(1198)
57 54 49 건설 C C B E 화북 수명:
소속:
금 최후의 황제. 몽골군의 개봉 공격으로 채주로 쫒겨났다. 채주에서 몽골과 남송의 협공을 당하고, 항복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자결했다.

발데마르 1170∼1241(1170)
72 70 69 B C B A 스칸디나비아 수명:
소속:
덴마크 국왕. 독일 북동부와 에스토니아를 공략하여,「승리왕」이라 불렸다. 법을 정비하고 정치체제를 강화시켰으며, 내정의 강화에 주력했다.

발터 1170∼1229(1170)
66 24 37 문화 D E E E 독일 수명:4
소속:
중세 독일의 서정 시인.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 등을 모셨다. 괴테 다음 가는 독일 명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연애시나 잠언시의 명작을 남겼다.

볼로지스라프 ????∼????(1168)
64 61 46 B C C B 서루시 수명:5
소속:
러시아 남서의 도시 갈리치의 귀족. 선대 로만의 아들인 다닐을 폐위시켜 갈리치 공위에 올랐다.

베단타 ????∼????(1215)
63 18 55 외교 등용 D E E E 인도 수명:
소속:
인도의 종교가. 힌두교 관련 서적들을 산스크리트어로 기록하였다.

빌라르 1190∼1260(1190)
53 12 28 건설 문화 E E E E 프랑스 수명:
소속:
프랑스의 건축가. 유작인「화첩」은 중세의 건축가들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문타실 ????∼????(1220)
59 65 62 농업 돌격 C C B B 북아프리카 수명:3
소속:
북 아프리카의 하프스 왕조 제2대 군주. 프랑스 국왕 루이 9세가 이끄는 제7차 십자군을 격퇴했다.

민다우가스 ????∼????(1186)
67 73 62 농업 문화 등용 기동 공성 B B B E 서루시 수명:
소속:
리투아니아 대공. 리투아니아의 귀족들을 결속시켜 독일기사단이나 외적의 침입을 막았다.

롱스워드 1212∼1250(1212)
52 70 54 돌격 공성 복병 B C A D 영국 수명:
소속:
영국의 장군. 루이 9세의 제6회 십자군에 참가하였다. 만스라의 전투에서는 수족을 잃으면서도 분전하여, 사후에는 용감함을 찬양받았다.

로제 ????∼????(1229)
56 59 44 건설 C D C B 이탈리아 수명:4
소속:
양 시칠리아의 관인. 샤를 1세를 섬겼다. 샤를 1세가 예루살렘 왕위를 얻자 대리인으로서 중동의 십자군의 거점인 악콘으로 갔다.

소르본 1201∼1274(1201)
65 9 46 건설 문화 등용 D E E E 프랑스 수명:
소속:
프랑스의 신학자. 루이 9세에게 사관했다. 소르본 대학의 전신인 신학교를 파리에 설립했다.

루돌프 1세 1218∼1291(1218)
77 82 83 농업 외교 등용 돌격 연사 공성 A B A E 독일 수명:2
소속:
제27대 신성 로마 황제. 명문 집안 합스부르크 출신. 국내 통치를 안정시킨 후, 적극적으로 원정을 행하여 영토를 확대했다.

루이 9세 1214∼1270(1214)
74 72 68 건설 기동 공성 B C B B 프랑스 수명:4
소속:
프랑스 국왕. 경건한 기독교 교도로「성왕」이라고 일컬어졌다. 유럽 국가간의 대립에서는 조정역을 맡은 반면에 이교도 타도에는 집념을 불태웠다.

루미 ????∼????(1207)
42 25 63 건설 문화 E E E E 페르시아 수명:2
소속:
이란의 서정 시인. 이슬람 신비주의를 기초로 한 시집의 걸작을 남겼다. 동시에 메프레비 탁발 수사단을 창시하여 선회 무도에 의한 수행을 포교했다.

요한네스 3세 1193∼1254(1193)
67 69 57 등용 기동 돌격 화공 B C A B 발칸 수명:
소속:
비잔틴 제국의 망명정권인 니케아 제국의 황제. 로도스섬과 마케도니아 영토의 회복에는 성공하였으나, 콘스탄티노플의 탈환에는 실패했다.

유리 ????∼????(1172)
46 51 44 B D C E 서루시 수명:4
소속:
블라디미르 대공.

야라와치 ????∼1255(1180)
91 15 65 농업 상업 외교 E E D E 중앙아시아 수명:2
소속:
코라즘 출신인 재정 담당관. 몽골군의 침공으로 징기스 칸에게 복종했다. 오고타이 칸의 시대에는 세제를 담당하여 지폐 발행 등을 실시했다.

야프야 1세 ????∼????(1195)
67 64 53 외교 돌격 공성 B B C C 북아프리카 수명:
소속:
하프스 왕조의 초대군주. 무와히드 왕조의 쇠퇴를 틈타, 튀니스에서 자립했다.

야금라산 ????∼1283(1210)
64 55 37 농업 C B C D 북아프리카 수명:1
소속:
무와히드 왕조의 관인. 북 아프리카의 도시 토렘센에서 총독으로 일했다. 무와히드가 분열되자 독립했다.

야쿠트 1179∼1229(1179)
67 43 56 문화 외교 D E C E 서아시아 수명:4
소속:
이슬람의 지리학자. 그리스의 노예였으나 바그다드의 상인이 그를 키우고 교육했다. 아라비아 지리학의 집대성인『제국집성』을 저술했다.

챠스와 ????∼????(1214)
47 66 55 농업 기동 B C D E 동남아시아 수명:
소속:
파간 왕조의 제10대 군주. 제9대 티로민로의 아들. 아버지의 사후, 왕위를 계승했다.

챠가타이 ????∼1242(1184)
68 80 62 등용 돌격 B B A E 몽골 수명:1
소속:
징기스 칸의 둘째 아들. 성품이 거칠어 자주 형인 주치와 충돌했다. 아버지 밑에서 서역정벌에 참가하여 중앙 아시아의 영토를 받았다.

몬케 1208∼1259(1208)
86 84 91 농업 상업 건설 외교 돌격 공성 B A A E 몽골 수명:
소속:
몽골제국 제4대 칸. 툴루이의 장남. 남송을 쿠빌라이, 서아시아를 훌라구에게 공략시켜 제국의 판도를 넓혔다. 남송과의 싸움도중 병사했다.

호콘 4세 1204∼1263(1204)
83 71 75 상업 외교 등용 기동 공성 복병 B B B A 스칸디나비아 수명:
소속:
노르웨이 국왕. 국정을 정비하고 한자동맹의 도시와 통상조약을 맺었다. 아이슬란드·그린란드를 병합하여, 노르웨이 왕건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베라 4세 1206∼1270(1206)
70 53 58 농업 상업 건설 C D C E 발칸 수명:
소속:
헝가리 국왕 엔드레의 아들. 아버지 사후 왕위를 계승했다. 몽골군의 공격으로 혼란된 국내를 훌륭하게 안정시켰다.

베이컨 1214∼1294(1214)
65 21 57 상업 건설 문화 화공 D E E E 영국 수명:0
소속:
영국의 스콜라 학자.「경탄박사」라고 일컬어졌다. 자연과학에 정통해 있고 유럽에서 최초의 화약의 발견이나 확대경 등을 발명했다.

헨릭 2세 ????∼????(1206)
58 62 53 문화 C C D E 서루시 수명:
소속:
크라코프 제후. 후의 폴란드 국왕. 발슈타트의 전투에서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패배했다.

헨릭 1세 ????∼????(1175)
45 57 67 농업 C D C E 서루시 수명:
소속:
슐레지엔 제후. 제후의 내란에 승리하여, 폴란드 왕위를 탈취했다.

헨리 3세 1207∼1272(1207)
43 53 46 등용 C C C E 영국 수명:2
소속:
영국왕. 국비를 남용하고 마그나 카르타를 무시한 채 왕권 확장을 꾀하여 시몬등 제후의 반란을 초래했다. 이에 굴복하여 만년은 실권을 아들에게 물려 주었다.

프라노 카르피니 ????∼1252(1198)
66 40 57 외교 등용 C D D E 이탈리아 수명:
소속:
이탈리아의 수도사, 여행가. 로마 법왕 이노켄티우스 4세의 명으로 몽골제국 수도 카라코룸에 방문하여, 제3대 칸 구유크를 알현했다.

프리드리히 2세 1194∼1250(1194)
62 74 100 농업 문화 외교 등용 화공 복병 A B B B 독일 수명:4
소속:
신성 로마 황제. 옥좌 위의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불려진 지식인. 파문 황제의 입장이면서 외교교섭으로 십자군에 성공했다. 성지 예루살렘에 무혈 입성했다.

훌라구 1218∼1265(1218)
77 86 83 건설 문화 외교 기동 공성 복병 B A A E 몽골 수명:
소속:
툴루이의 삼남. 형 몬케의 명으로 서아시아 원정을 행하였다. 압바스 왕조를 멸망시켜 일 한국을 열었다. 쿠빌라이 칸의 원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쿠빌라이 1215∼1294(1215)
87 85 84 건설 문화 외교 등용 돌격 연사 공성 B B A E 몽골 수명:1
소속:
징기스 칸의 손자. 몽골제국 제5대 칸. 남송을 멸하고 중국을 통일하여 국호를 원으로 했다. 동남아시아나 고려를 속국으로 삼고 일본에도 군대를 보냈다.

페르난도 3세 1199∼1252(1199)
70 74 65 건설 문화 외교 기동 돌격 공성 A B B B 이베리아 수명:
소속:
카스티야 국왕. 레온 왕국을 통합하여 세력을 확대했다. 이슬람 교도와 싸워, 코르도바·세빌리아등을 탈회했다.

판디아 1세 ????∼????(1180)
53 57 47 농업 C D C D 인도 수명:
소속:
후기 판디아 왕조의 제2대 군주.

바스바 1235∼1280(1235)
76 5 62 문화 외교 D E E E 티베트 수명:3
소속:
티베트 불교(라마교)의 승려. 쿠빌라이가 중용하여 구 서하령 및 티베트의 행정이 맡겨졌다. 원조의 공용 문자가 된 바스바 문자를 만들었다.

바르반 ????∼1287(1207)
68 54 72 농업 건설 복병 C C B E 인도 수명:1
소속:
인도 노예왕조 제8대 술탄. 몽골군의 침입으로부터 북인도를 지킨 이외에 국법의 엄수를 주지시켜 국내의 풍기를 단속했다.

바얀 1246∼1294(1246)
77 95 86 농업 상업 기동 연사 화공 공성 B A S D 몽골 수명:3
소속:
쿠빌라이 칸 휘하의 명장. 남송 공략의 총사령관으로 활약하고 적의 수도 임안을 함락했다. 그 후는 북쪽 변경으로 가 하이두의 난에서 공을 세웠다.

바투 1207∼1255(1207)
82 96 83 등용 기동 돌격 연사 복병 A A A E 몽골 수명:5
소속:
주치의 아들. 유럽 원정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발슈타트 전쟁에서 폴란드 독일 연합군을 격파하여 킵차크 한국을 세웠다.

바이발스 1233∼1277(1233)
78 94 85 상업 문화 외교 등용 기동 연사 화공 공성 A B S B 이집트 수명:4
소속:
중세 이슬람 세계의 영웅. 노예로부터 출세하여 맘루크 왕조 술탄이 되었다. 17년간의 치세에서 38번이나 원정하여 십자군과 몽골군을 연달아 격파했다.

핫리칸 1211∼1282(1211)
66 24 53 농업 상업 문화 D E E E 서아시아 수명:2
소속:
이슬람 문학자. 이슬람 교도의 전기를 저술했다. 맘루크 왕조에서 시리아의 수석 재판관을 맡았다.

나피스 ????∼1288(1220)
59 33 46 상업 D D D D 이집트 수명:
소속:
이슬람의 의학자. 카이로와 다마스커스에서 활약했다. 저서인『규범적 해부학설』은 걸출한 내용을 자랑하여, 이슬람 의학의 우수함을 증명했다.

드미트리 ????∼????(1190)
57 61 57 돌격 C D B E 서루시 수명:4
소속:
키에프 공국군의 최고사령관.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과 싸웠다. 도망한 키에프 대공을 대신하여 끈기 있게 싸웠으나 패배했다.

보두안 2세 1217∼1273(1217)
28 47 38 돌격 C D C E 발칸 수명:
소속:
라틴제국 최후의 황제. 니케아의 미카엘 8세에게 패하여, 콘스탄티노플에서 쫒겨났다.

토마스 아퀴나스 1225∼1274(1225)
77 10 47 농업 문화 외교 E E E E 프랑스 수명:2
소속:
이탈리아의 신학자. 파리대학 등에서 활약하고『신학대전』등 80이상의 저작을 남겼다.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하여 사후는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툴루이 ????∼1232(1192)
63 92 73 농업 기동 돌격 복병 A A A E 몽골 수명:
소속:
징기스 칸의 사남.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을 발휘하여, 금나라 정벌과 서정에서 활약했다. 후계자로써 유력시 되었으나, 형 오고타이 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데이 로씨 ????∼????(1177)
53 41 62 농업 D C C E 영국 수명:4
소속:
영국 최고 사법관. 국왕 존을 모셨다. 제후로부터 반감을 사 마그나 카르타 성립까지 일련의 내란을 초래했다.

테무게 ????∼1246(1168)
57 53 66 등용 B C B E 몽골 수명:1
소속:
징기스 칸에게서 가장 사랑을 받은 동생. 나이만족과의 싸움이나 금국 원정에서 활약하여 강력한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오고타이 사후, 칸의 지위를 노렸으나 실패했다.

티로민로 ????∼????(1195)
56 58 42 건설 복병 C D D E 동남아시아 수명:
소속:
파간 왕조 제9대 군주.

무스탄실 ????∼????(1200)
42 62 45 C C C E 서아시아 수명:
소속:
압바스 왕조 제34대 칼리프.

수튤라 1214∼1284(1214)
69 44 62 문화 D E E C 스칸디나비아 수명:2
소속:
아이슬란드 출신의 문필가.『에다』를 편찬한 스노리 스털루손의 조카. 숙부의 사후, 편찬을 이어 맡았다.

수부타이 ????∼????(1173)
17 93 44 등용 기동 돌격 복병 B B S E 몽골 수명:2
소속:
「사구」의 한 사람. 나이만족과의 싸움에서 형 젤메와 함께 철윤차로 산맥을 돌파하여 적진을 탈취했다. 서정에도 참가하여 러시아군을 무찌르는 등의 활약을 했다.

스노리 1178∼1241(1178)
64 21 54 문화 외교 D D D C 스칸디나비아 수명:3
소속:
아이슬란드 출신의 시인. 노르웨이 왕실에서 봉직했다. 북유럽 신화를 기초로 한 서정시『에다』를 편찬했다.

스콧 ????∼1236(1175)
66 21 46 문화 D E E E 이탈리아 수명:4
소속:
영국 출신의 학자.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점성관을 맡았다. 아라비아어 문헌의 번역도 했다.

마수드 베이 ????∼1289(1202)
83 36 59 농업 상업 외교 E E D E 중앙아시아 수명:1
소속:
코라즘 출신의 재정가. 아버지 야라와치와 함께 몽골에게 항복했다. 차가타이 한국 성립 후는 사마르칸트 등의 도시에서 행정, 징세를 담당하여 민완을 발휘했다.

죠안 빌 1225∼1317(1225)
68 59 67 문화 외교 기동 B C B D 프랑스 수명:
소속:
프랑스의 귀족, 연대기작자. 루이 9세를 따라, 제6회 십자군에 종군했다.

쥬와이니 1226∼1283(1226)
71 38 64 문화 외교 D D D E 서아시아 수명:3
소속:
일한국의 역사가. 훌라구의 비서로 근무한 후, 바그다드 태수로 임명되었다. 저작『세계 정복자의 역사』는 귀중한 몽골 자료가 되었다.

쟝 1세 1148∼1237(1148)
51 48 59 농업 외교 C C C E 프랑스 수명:
소속:
예루살렘 왕. 라틴제국의 섭정을 맡아, 보두안 2세를 보좌했다.

쟈코모 ????∼????(1190)
58 64 66 상업 외교 C D C B 이탈리아 수명:
소속:
베네치아 통령.

치슈티 ????∼1236(1161)
57 15 58 문화 E E E E 서아시아 수명:2
소속: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 서북인도에서 활약했다.

샤를 1세 1227∼1285(1227)
43 64 27 농업 건설 등용 돌격 B C B C 프랑스 수명:4
소속:
양 시칠리아 국왕.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의 동생. 중과세를 하고 압정을 행했다.「시칠리아의 만종」이라는 민중반란을 초래하여 왕위에서 쫓겨났다.

샤무스 ????∼1246(1186)
64 31 73 문화 외교 등용 D D D E 서아시아 수명:
소속:
이슬람의 종교가, 시인. 이란에 신비주의를 퍼트렸다. 메프레비 교단의 창시자인 루미와 친분이 있었다.

시몬 1208∼1265(1208)
69 62 64 돌격 C B C E 영국 수명:4
소속:
프랑스계 영국 귀족. 전제 군주 헨리 3세와 대립했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반대파 세력을 규합하여 현재의 영국의회의 기초를 만들었다.

산계 ????∼????(1176)
58 38 67 농업 외교 C D D E 티베트 수명:2
소속:
티베트 불교(라마교) 바쿠모두파의 승려. 몽골과 티베트의 화평 공작에 진력했다.

사캬반디타 1181∼1251(1181)
77 30 60 외교 등용 D D D E 티베트 수명:0
소속:
티베트 불교(라마교) 사캬파의 승려. 징기스 칸으로부터 존경받고 그 보호를 받았다. 후의 사캬파 전성의 기초를 닦았다.

사이디 ????∼1231(1185)
69 43 55 농업 등용 C C D E 북아프리카 수명:
소속:
이슬람의 종교가. 신비주의자의 영향을 받아, 튀니스에 교의를 널리 알리는 활동을 했다.

사이드 1211∼1279(1211)
82 43 64 농업 상업 건설 등용 C D C E 중앙아시아 수명:
소속:
보하라 출신의 정치가. 징기스 칸의 서정군에 항복하여, 이후 쿠빌라이의 대에 몽골제국에 사관하였다. 통치자를 각지에 파견하여 선정을 행했다.

사아디 1184∼1291(1184)
58 22 45 문화 외교 E E E E 페르시아 수명:0
소속:
이란의 시인. 바그다드의 대학에서 배운 후, 탁발승으로서 30년간 각국을 방랑했다. 저작『과수원』『장미원』은 인생의 교훈을 포함시킨 걸작이다.

곤사로 1180∼1246(1180)
61 47 53 농업 문화 복병 C D D D 이베리아 수명:
소속:
스페인의 시인. 종교를 소재로 많은 시를 남겼다.

콘라트 1120∼1287(1220)
55 7 37 문화 E E E E 독일 수명:3
소속:
독일의 시인. 중세 독일의 시인 중에서 걸출한 재능을 가지고, 그 유려한 표현은 후세의 시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콘월 백작 1209∼1272(1209)
35 52 16 외교 C C C E 영국 수명:2
소속:
영국왕 헨리 3세의 동생. 형과 함께 제후의 반란군과 싸워 패배했다. 궐위가 계속되었던 신성 로마 황제로 선출되었으나 실권은 잡을 수 없었다.

게오르기 1189∼1238(1189)
56 67 45 B C B E 서루시 수명:
소속:
러시아의 귀족.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의 공격을 받아, 본거지인 블라디미르를 잃었다. 몽골군과의 대전중에 죽었다.

케세기 헨릭 ????∼1274(1217)
46 51 50 D C C E 발칸 수명:2
소속:
헝가리 태수. 황태자 라슬로를 꾀어내어 국왕 이슈트반에게 반기를 들었다. 호족인 차크의 군대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

그로스테스트 1175∼1253(1175)
66 27 58 농업 상업 건설 문화 D C D E 영국 수명:
소속:
영국의 신학자.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로 일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 주해나 고대 크리스트교 문헌을 번역했다.

구유크 1206∼1248(1206)
71 73 67 농업 상업 돌격 B B A E 몽골 수명:
소속:
몽골제국 제3대 칸. 오고타이의 장자. 모후 트레게네의 지원을 받아 칸위에 올랐다. 국내 혼란 수습에 노력하였으나 즉위 후 3년만에 죽었다.

키흐티 1172∼1248(1172)
61 24 53 문화 D E E E 이집트 수명:2
소속:
아랍의 역사가. 시리아의 도시 알레포에서 행정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학자로 전신했다.『문법가의 이야기』등 많은 저작을 남겼다.

케이크바드 ????∼1237(1170)
73 71 76 농업 상업 외교 돌격 공성 복병 A B B E 서아시아 수명:
소속:
룸 셀주크 왕조의 술탄. 시리아에 진출하여 아이유브 왕조와 싸웠다. 국내 산업을 진흥시켜, 룸 셀주크 왕조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오고타이 칸 1186∼1241(1186)
88 71 76 농업 건설 등용 공성 B C B E 몽골 수명:3
소속:
몽골 제국 제2대 칸. 징기스 칸의 삼남. 야율초재를 중용하여 내정을 정비했다. 금이나 유럽에 군대를 보내고 영토 확대에 힘을 썼다.

오타카르 1230∼1278(1230)
71 66 64 농업 B B B E 독일 수명:4
소속:
오스트리아 공. 헝가리에 이겨 영토를 확대했다. 루돌프 1세가 신성 로마 황제로 즉위하고 헝가리와 동맹을 맺자 반대파로서 살해되었다.

엔드레 ????∼????(1167)
30 58 37 돌격 D D B E 발칸 수명:3
소속:
헝가리 국왕 베라 3세의 아들. 대외전쟁을 거듭하여 국비를 낭비했다. 국고의 적자를 귀족에 대한 과세로 보충하려고 하다 반감을 사서 왕권의 약체화를 초래했다.

에르투룰 ????∼1281(1235)
71 73 68 돌격 공성 A B B E 서아시아 수명:
소속: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창시자인 오스만 베이의 아버지. 룸 셀주크 왕조에 사관하여, 서방의 국경을 수비하면서 비잔틴 제국과 싸웠다.

엣체리노 1194∼1259(1194)
52 81 66 기동 돌격 A A B D 이탈리아 수명:
소속:
이탈리아의 장군. 신성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섬겼다. 용감함과 잔학함으로 유명했다. 이탈리아의 도시들과 로마 교황의 군을 차례로 격파했다.

울리히 1200∼1275(1200)
52 91 65 문화 외교 기동 돌격 복병 S B S E 독일 수명:
소속:
독일의 음유시인. 귀부인을 찬양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을 신조로 삼은, 기사도정신을 지닌 사람이었다. 마상 창시합에서 307명의 창을 꺾어, 무적을 과시했다.

우량카타이 1201∼1272(1201)
36 82 68 기동 돌격 B A A E 몽골 수명:
소속:
몽골제국의 장군. 수부타이의 아들. 제4대 칸 몬케를 따라 남송 토벌군에 참가하였다. 인도차이나를 공격하여 베트남을 복속시키는등 공이 컸다.

우트만 ????∼????(1185)
59 66 63 외교 기동 복병 B C C C 북아프리카 수명:
소속:
마린 왕조의 제2대 군주.

이반 아센 ????∼1241(1180)
65 76 72 농업 상업 돌격 공성 복병 B B B E 발칸 수명:
소속:
불가리아 황제. 마케도니아·알바니아등의 발칸반도의 여러 지역을 병합하고, 제2의 불가리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인타라티트 ????∼????(1202)
65 63 59 외교 기동 복병 B B D D 동남아시아 수명:
소속:
타이족의 장군. 13세기 전반에 타이 서부의 도시 스코타이를 크메르족으로부터 탈취해 독립하여 왕조를 열었다.

이르투미슈 ????∼1236(1183)
65 63 59 건설 연사 C B B E 서아시아 수명:4
소속:
인도 노예왕조 제2대 술탄. 초대 술탄인 아이바크의 사후, 후계자 싸움에 이겨 권력을 장악했다. 벵골지방을 수중에 넣고 북인도 지방을 안정시켰다.

이븐 사이드 1208∼1286(1208)
64 43 52 상업 건설 문화 D E D E 북아프리카 수명:1
소속:
아랍의 역사가, 지리학자. 북 아프리카의 도시 튀니스에서 하프스조의 문타실을 섬겼다. 지리서『대지의 가로와 세로의 넓이』를 비롯한 저작이 있다.

이븐 아라비 1165∼1240(1165)
45 11 67 문화 E E E E 이집트 수명:2
소속:
이슬람의 신학자. 스페인에서 태어나 다마스커스에 정주했다. 이슬람교 교의를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유럽의 신학자에게 영향을 주는 사상을 남겼다.

알렉산드르 1220∼1263(1220)
74 88 76 외교 등용 기동 돌격 복병 A C A E 서루시 수명:5
소속:
중세 러시아의 국민적인 영웅. 약관 16세로 노브고르트 공위에 올랐다. 전술에 뛰어나 침공해 온 스웨덴이나 독일 기사단을 모두 격파했다.

알베르투스 1200∼1280(1200)
73 7 30 건설 문화 E E E E 독일 수명:1
소속:
독일의 자연과학자, 철학자. 당시의 모든 학문에 정통해 있었다. 대학을 창설하고 연구와 학문에 종사하여, 신학자 토머스 아퀴나스 등을 배출했다.

알폰소 현왕 1221∼1284(1221)
55 62 33 건설 문화 B D C E 이베리아 수명:3
소속:
카스티야왕.「현왕」이라 일컬어졌다.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통치면에서는 실패를 거듭했으나 천문표 작성이나 번역 등의 작업을 추진하여 문화적인 공적을 세웠다.

알 부시리 1213∼1296(1213)
42 16 35 문화 등용 D E E E 북아프리카 수명:1
소속:
이슬람 시인. 뇌졸중으로 혼수에 빠졌을 때에 꾼 꿈을 기초로 하여『예언자의 망토』라는 장편시를 썼다.

알 카밀 ????∼????(1169)
61 66 67 기동 복병 C C B C 이집트 수명:3
소속:
아랍의 아이유브 왕조 제5대 술탄. 선대인 알 아딜의 장남. 십자군을 다미에따에서 격퇴했다.

알 아실 1160∼1234(1160)
65 37 59 농업 문화 외교 D E D E 서아프리카 수명:2
소속:
이슬람의 역사가. 압바스조 칼리프로 부터 파견된 사신, 십자군과의 전쟁 등을 경험했다. 저작『연대기집성』은 십자군과 몽골군에 관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아리크부카 ????∼1266(1222)
57 71 43 돌격 복병 C B B E 몽골 수명:
소속:
몽골제국의 장군. 툴루이의 막내아들. 제4대칸 몬케가 진중에서 죽은 후, 칸위 계승을 놓고 형인 쿠빌라이와의 항쟁에서 패했다.

아부 샤마 1203∼1264(1203)
67 42 55 D D E E 이집트 수명:
소속:
시리아 출신 역사학자. 다마스커스의 학원의 교수로 일했으며, 살라딘의 전기를 저술했다.

아하마드 1199∼1276(1199)
57 42 38 농업 건설 문화 E D E E 이집트 수명:1
소속:
이슬람교의 성인. 수피즘(신비주의)을 신봉하고 이집트에서 활약했다.

앗 바르 1199∼1260(1199)
67 53 55 상업 문화 C C C C 북아프리카 수명:
소속:
이슬람의 관인, 역사가. 스페인에서 태어났으나 크리스트교도의 침공을 받아 튀니스로 이주. 튀니스의 대신에 발탁되었다.

앗 투시 1201∼1278(1201)
53 42 58 상업 건설 문화 C D C E 서아시아 수명:2
소속:
이란 출신의 천문학자. 일한국 군주 훌라구의 원조를 받아 대천문대를 건설했다. 천문학 이외의 분야에도 정통해 있고 이슬람 학술을 재흥시켰다.

아스란 ????∼????(1200)
54 38 56 외교 등용 C D D E 프랑스 수명:
소속:
프랑스의 도미니크회의 수도사. 로마 법왕 이노켄티우스 3세의 명을 받아 일 한국에 방문, 포교 활동에 종사하였다.

아이케 ????∼????(1180)
65 57 43 농업 문화 C D B E 독일 수명:
소속:
독일의 귀족. 역사와 법률에 관한 저작을 남겼다.

아조 1150∼1230(1150)
58 46 57 농업 D D E E 독일 수명:4
소속:
이탈리아의 법학자. 볼로냐 대학에서 교수로 종사했다. 로마법에 관한 저작을 남겼다.


시나리오4 장수 일람...

예(芸)종 ????∼????(1338)
67 59 56 농업 등용 복병 B C C C 화남 수명:
소속:
진조 베트남의 제9대 군주.

아이이 1350∼1420(1350)
64 44 69 건설 문화 C D D E 프랑스 수명:
소속:
프랑스의 신학자. 신성 로마 황제 지기스문트가 개최한 콘스탄츠 공의회의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아지즈 1세 ????∼????(1340)
53 64 57 농업 기동 B C C C 북아프리카 수명:
소속:
마린 왕조의 제18대 군주.

아스알디 ????∼1381(1324)
57 38 62 상업 등용 C C C D 이집트 수명:
소속:
다마스커스를 본거지로 하는 이슬람 상인. 후에 술탄이 된 바르크크와 함께, 카이로등의 도시를 순회했다.

앗 사리프 ????∼????(1349)
45 52 49 상업 C C C D 이집트 수명:
소속:
맘루크 왕조의 술탄. 아버지 샤아반의 사후, 술탄위를 계승했다.

앗 테르다크 1317∼1375(1317)
67 62 59 농업 외교 돌격 C C C B 스칸디나비아 수명:
소속:
덴마크 국왕. 영토확장을 꾀했으나 한자 동맹에 패하고, 스트랄슨드의 화약에서 한자동맹 도시들의 엄청난 특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후마드 2세 ????∼????(1338)
61 55 54 상업 기동 복병 B C B C 북아프리카 수명:
소속:
하프스 왕조의 제19대 군주.

아부 한무 ????∼????(1329)
54 48 57 건설 C C B D 북아프리카 수명:
소속:
북아프리카의 도시 트렘센을 수도로 하는 압드 알 와드조의 군주.

아유르 시리다라 ????∼1378(1340)
58 64 61 농업 외교 돌격 B B B E 몽골 수명:
소속:
원의 황제 토곤 테무르의 아들. 아버지의 사후 제위를 계승했다. 몽골의 잔존세력을 결집하여 명에 반격하였으나 실패했다.

알 아타베키 ????∼1412(1350)
53 51 46 기동 C C B E 이집트 수명:
소속:
맘루크 왕조의 장군. 바르크크를 모셨다. 다마스커스 총독으로 있다가, 티무르군의 공격을 받고 쫒겨났다.

안 왈 1356∼1433(1356)
67 26 54 상업 문화 D E D E 페르시아 수명:
소속:
아프가니스탄 북서부의 도시 헤라트의 시인. 티무르의 손자 울르그베크의 보호를 받았다.

마마이 ????∼????(1321)
69 65 70 농업 상업 등용 복병 B C B E 몽골 수명:
소속:
킵차크 한국의 장군. 20년동안 14명의 칸을 폐하고 세우면서, 국내 실권을 장악했다. 후에 모스크바 대공 돈스코이에게 패했다.

이븐 밧투타 1304∼????(1304)
67 36 63 상업 문화 외교 D E E D 북아프리카 수명:2
소속:
모로코 출신의 아랍 사람. 대여행가로 원조 말기의 중국을 방문하는 등, 장장 12만 7천㎞를 답파했다. 저작으로는『삼대륙 주유기』가 있다.

위클리프 1320∼1384(1320)
65 21 57 문화 외교 D D E E 영국 수명:
소속:
영국의 신학자. 옥스포드 대학교수. 성서가 종교상의 최고의 권위라고 주장하며 로마의 교회를 비판하여, 종교 개혁의 선구자가 되었다.

빌헬름 ????∼????(1365)
48 75 58 기동 돌격 공성 A B S E 독일 수명:
소속:
네덜란드의 제후. 무용에 뛰어나서, 영국 국왕 리처드 2세가 개최한 마상창시합 대회에서 우승했다.

우스만 ????∼1434(1355)
63 78 54 농업 외교 기동 돌격 복병 B A A E 서아시아 수명:
소속:
투르크의 장군. 소아시아 동부에 이슬람 왕조인 백양조를 건국했다. 티무르가 대두하자 항복하고, 앙카라의 잔투에 종군하여 활약했다.

우바이드 ????∼1371(1311)
62 35 48 문화 외교 C E E E 페르시아 수명:
소속:
이란의 시인. 쟈라일 왕조의 제2대 군주 우와이스의 보호를 받았다.『귀족의 윤리』라는 저작을 남겼다.

울루스 ????∼????(1311)
43 64 57 기동 복병 C C B E 몽골 수명:
소속:
킵차크 한국의 군주.

우와이스 ????∼1374(1325)
63 72 69 건설 문화 기동 돌격 공성 B B A E 페르시아 수명:
소속:
이라크의 이슬람 왕조인 쟈라일 왕조의 제2대 군주. 문예를 보호하고, 스스로 시 짓는데 힘썼다. 서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점령하였으나 티무르에게 패했다.

에드워드 3세 1312∼1377(1312)
71 86 66 상업 등용 기동 돌격 연사 A A A A 영국 수명:
소속:
영국왕. 프랑스의 카페왕조를 단절시키고, 왕위계승권을 주장해 백년 전쟁을 일으켰다. 연전연승하며 프랑스 군을 추격했으나, 샤를 5세에게 패했다.

에드워드 흑태자 1330∼1376(1330)
42 95 83 건설 문화 기동 돌격 연사 화공 공성 A S S B 영국 수명:
소속:
영국왕 에드워드 3세의 장자. 검은 갑주를 애용하여「흑태자」라고 불렸다. 군사에 능해, 백년전쟁에서 프랑스 군을 괴멸시키는등, 무명을 떨쳤다.

엔리케 1394∼1460(1394)
75 78 84 상업 건설 문화 등용 기동 연사 A B B B 이베리아 수명:
소속:
포르투갈의 국왕 죠안 1세의 아들. 항해학교를 창설하여 탐험항해를 장려했다. 항로를 새로 확장시키거나 해외 식민지 획득에 공헌하여,「항해왕자」라고 불렸다.

엔리케 2세 1333∼1379(1333)
67 65 54 상업 외교 복병 B C B E 이베리아 수명:
소속:
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1세의 서자. 압정을 행하던 페드로 왕을 살해하여 왕위에 즉위하여, 트라스타마라 왕조를 열었다.

오라프 1370∼1387(1370)
53 57 55 건설 C C D B 스칸디나비아 수명:
소속:
노르웨이 국왕. 호콘 6세의 아들. 어머니인 덴마크 왕녀 덕분에, 덴마크 왕을 겸임했다.

카디미에슈 3세 1309∼1370(1309)
94 79 86 농업 상업 건설 문화 외교 돌격 공성 B B A E 서루시 수명:
소속:
폴란드 국왕. 폴란드 사상 유일하게 대왕으로 불려진 왕. 보헤미아나 리투아니아와 싸워 영토를 확대하고, 농민을 후하게 보호하여「농민왕」이라고 불렸다.

카라 유스프 ????∼????(1355)
67 73 57 돌격 공성 복병 A B B E 서아시아 수명:
소속:
이란의 이슬람 왕조인 흑양조의 제2대 군주. 티무르와의 싸움에서 패하여 이집트로 쫒겨났다. 티무르 사후 재기하여 바그다드를 점령했다.

카를 4세 1316∼1378(1316)
74 54 72 상업 문화 외교 B C C E 독일 수명:
소속:
신성 로마 황제. 금인칙서를 발포하여 제후에 의한 황제 선출을 법제화 하였다. 또한, 아비뇽에 구금된 로마 교황을 로마로 귀환시켰다.

카를로 젠 ????∼????(1335)
49 71 64 상업 돌격 공성 B C B A 이탈리아 수명:
소속:
베네치아의 장군. 동지중해의 제노바군과의 싸움에서 전과를 거두었다. 키옷쟈의 전투에서는 부사령관으로써 베네치아의 승리에 공헌했다.

카로이 2세 ????∼????(1347)
54 53 37 C C C E 발칸 수명:
소속:
나폴리 국왕 카를로 2세의 증손. 앙쥬가가 배출한 최후의 헝가리 국왕이다.

칸타크제노스 1296∼1383(1296)
56 53 48 상업 건설 복병 C C C D 발칸 수명:
소속:
요한네스 5세의 후견인을 맡았고, 요한네스 6세의 명을 받아 공동통치를 행했다. 후에 요한네스 5세와 대립하여 실각했다.

갈레앗쵸 2세 1320∼1378(1320)
64 59 67 상업 외교 공성 B B C D 이탈리아 수명:
소속:
북이탈리아의 명문 비스콘티가의 두령. 밀라노를 지배했다.

코코 테무르 ????∼1375(1330)
53 82 72 등용 기동 돌격 연사 복병 B A S E 몽골 수명:
소속:
원말기의 장군. 연패의 원군을 지휘하여 주원장의 대군과 분투했다. 서달의 토벌군이 파견되었을 때, 그것을 격파해 원을 멸망으로부터 구했다.

코쟈 ????∼????(1332)
44 62 31 돌격 C C C E 몽골 수명:
소속:
챠가타이 한국의 왕족.

콘타리니 ????∼????(1334)
64 62 65 상업 건설 B C D B 이탈리아 수명:
소속:
베네치아 통령. 키옷쟈의 전투에서 숙적인 제노바를 격파했다.

사케티 1335∼1400(1335)
54 43 52 농업 문화 C C D E 이탈리아 수명:
소속:
이탈리아 피렌체의 소설가. 저작인『300 이야기』는 당시 시민 생활을 묘사한 걸작으로 명성이 높다.

샤아반 ????∼????(1328)
53 61 54 화공 공성 B C B C 이집트 수명:
소속:
맘루크 왕조의 술탄.

사캬에세 ????∼????(1364)
68 40 54 건설 문화 외교 C D D E 티베트 수명:
소속:
티베트의 불교(라마교)의 승려. 춈카파의 고종사촌 아우. 춈카파가 명의 영락제의 초청을 받았을때, 대신 북경에 방문했다. 라사 근교에 세라사를 건립했다.

샤를 5세 1337∼1380(1337)
91 72 85 농업 상업 건설 등용 기동 화공 B C B E 프랑스 수명:
소속:
프랑스 국왕. 쟈크리의 난을 평정하고 국내 정세를 안정시켰다. 백년전쟁의 명장 듀 게클란을 이용하여 영국군을 격퇴하고 국가적 위기를 만회했다.

시르트베르카 ????∼????(1380)
58 67 62 농업 복병 B C B E 독일 수명:
소속:
독일의 장군. 오스만 투르크군에 참가하였다가, 앙카라의 싸움에서 티무르의 포로가 되었다. 후에 해방되어 독일에 귀국했다.

지기스문트 1368∼1437(1368)
63 59 66 농업 외교 C C B E 발칸 수명:2
소속:
헝가리 국왕. 후에 신성 로마 황제도 겸임했다. 니코폴리스에서 오스만 투르크군과 싸워 참패했다.

쟌 1351∼1402(1351)
75 76 84 건설 문화 외교 등용 기동 화공 A B B C 이탈리아 수명:
소속:
밀라노를 통치하는 실력자. 갈레앗쵸 2세의 아들. 스스로 카이사르의 재래를 칭하였으며, 볼로냐를 공략하여 말라노를 이탈리아 굴지의 유력국으로 만들었다.

죠안 1세 1357∼1433(1357)
72 76 67 상업 외교 기동 돌격 A C B B 이베리아 수명:
소속:
포르투갈 국왕. 이슬람 세력과 싸워 세우타를 점령했다. 아들인 엔리케 항해왕자를 통해 항해사업을 장려했다.

존 볼 ????∼1381(1350)
47 45 67 외교 등용 D D D E 영국 수명:6
소속:
영국의 사상가. 와트 타일러의 난에서 농민군을 조직하고 사회 평등을 주창하여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반란이 진압되어 처형되었다.

죠반니 1360∼1429(1360)
81 44 86 상업 문화 외교 등용 C D D D 이탈리아 수명:
소속:
피렌체의 금융업자. 메디치가 출신. 거액의 부를 무기로 피렌체시의 장관이 되어, 메디치가의 번영의 기초를 세웠다.

스칸데르베그 ????∼1468(1403)
62 87 77 건설 등용 기동 연사 복병 A A B E 발칸 수명:
소속:
알바니아의 장군. 소년기를 인질로써 오스만 투르크에서 보냈으나, 탈주하여 귀국. 오스만 투르크와의 싸움에서 알바니아의 독립을 보존했다.

스테트하이머 1360∼1432(1360)
65 53 49 상업 건설 문화 C D C E 독일 수명:
소속:
독일의 건축가. 고딕 양식의 대표자로, 독일 국내에 수많은 교회건축물을 남겼다.

스피넬로 1333∼1410(1333)
57 48 53 상업 문화 C D D E 이탈리아 수명:
소속:
이탈리아의 화가. 피렌체에서 활약하였고, 프레스코화의 걸작을 남겼다.

세르기 1321∼1391(1321)
64 18 53 농업 건설 문화 D D E E 서루시 수명:
소속:
러시아의 성직자. 강대한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의 제공국들이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주장하였다.

보카치오 1313∼1375(1313)
65 35 54 상업 문화 등용 D D D D 이탈리아 수명:
소속:
이탈리아의 소설가. 나폴리 문학의 고전을 연구하여『데카메론』을 저술하였다.『서정시집』을 쓴 페트라르카와 친교가 있었다.

춈카파 1357∼1419(1357)
73 37 66 건설 문화 외교 등용 C D D E 티베트 수명:
소속:
티베트 불교(라마교) 황모파의 시조. 티베트 부교도의 타락을 비판하여, 엄격한 계율주의를 주장하였다. 라사에 칸덴사를 건립하고, 같은 시기에 죽었다.

티무르 1336∼1405(1336)
80 98 91 건설 문화 등용 기동 돌격 연사 화공 공성 복병 S A S E 중앙아시아 수명:2
소속:
티무르 제국 창시자. 징기스 칸의 후손을 자칭하여 몽골 제국의 부흥을 노렸다. 서아시아를 석권한 후 중국으로 원정하는 도중에 병사했다.

데샹 1346∼1406(1346)
63 45 57 문화 외교 C D D E 프랑스 수명:
소속:
프랑스의 시인. 샤를 5세의 외교관으로 일했다. 백년전쟁을 소재로 시를 남겼다.

듀 게클란 1320∼1380(1320)
35 89 62 외교 기동 돌격 공성 복병 A A A E 프랑스 수명:
소속:
프랑스의 장군. 샤를 5세를 모시고 영국군과 싸워, 백년전쟁 초기에 잃은 영토를 회복했다. 이로 인해 무명이 영국군사이에 울려 퍼졌다.

투굴루크 2세 ????∼????(1345)
37 62 45 복병 B C D E 인도 수명:
소속:
투굴루크 왕조의 제4대 술탄.

토쿠타키야 ????∼????(1330)
52 54 59 C C C E 몽골 수명:
소속:
킵차크 한국의 군주 울루스의 아들.

토쿠타미슈 ????∼????(1345)
68 85 77 외교 기동 돌격 공성 B B A E 몽골 수명:
소속:
킵차크 한국의 장군. 티무르의 원조를 받아 국내 혼란을 수습했다. 후에 러시아에 침입하여 모스크바 대공 돈스코이의 군을 격파했다.

토곤 테무르 1320∼1370(1320)
37 51 47 문화 C C B E 몽골 수명:
소속:
원 최후의 황제. 티베트 불교(라마교)를 광신하여, 국비를 남용하여 국내를 혼란시켰다. 주원장의 대도 공격을 받아, 상도로 쫒겨났고 곧이어 병으로 죽었다.

돈스코이 1350∼1389(1350)
69 76 65 건설 등용 기동 돌격 공성 A C B E 서루시 수명:
소속:
모스크바 공국의 제6대 대공. 킵차크 한국과 리투아니아의 연합군을 크리코보의 전투에서 격파했다. 모스크바에 크레믈린 궁전을 건설했다.

나슈크반드 1317∼1389(1317)
59 33 66 문화 등용 C D D E 중앙아시아 수명:
소속:
이슬람의 종교가. 티무르 제국의 제2대 술탄 하릴을 섬겼다. 중앙아시아의 도시 부하라에 교의를 널리 펼치는데 활약했다.

니콜라 오렘 1320∼1382(1320)
87 39 57 농업 상업 건설 문화 C D D E 프랑스 수명:
소속:
프랑스의 경제학자. 샤를 5세의 경제고문을 맡았다. 통화정책을 건의하여 공적을 거두었고, 프랑스 경제를 안정시켰다.

마누엘 2세 1350∼1425(1350)
59 54 61 농업 외교 화공 C C C C 발칸 수명:
소속:
비잔틴 황제. 요한네스 5세의 아들. 오스만 투르크의 수도를 포위하였으나, 티무르가 대두하여 오스만 군을 압박하자 포위를 풀었다.

미하일 ????∼????(1344)
57 58 43 외교 C C C E 서루시 수명:
소속:
트베리 공국의 대공. 리투아니아와 손잡고 모스크바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했다.

하피즈 1320∼1389(1320)
64 27 41 문화 외교 D E E E 페르시아 수명:
소속:
이란의 서정시인. 이슬람 신비주의의 영향을 짙게 받은 작품을 남겼다. 인도의 이슬람교도들 사이에 명성이 퍼졌다.

하리하라 2세 ????∼????(1332)
57 54 37 상업 C D C E 인도 수명:
소속:
비자야나갈왕조 제3대 국왕. 아버지 부카 1세의 사후 왕위를 계승했다.

하릴 ????∼????(1325)
72 68 55 농업 B C C E 서아시아 수명:
소속:
오스만 투르크의 재상. 무라트 1세를 섬겼다. 영내의 크리스트교도를 징병하여 상비보병군인 예니체리군을 창설했다.

할둔 1332∼1406(1332)
54 26 70 건설 문화 외교 D E D E 북아프리카 수명:2
소속:
북 아프리카의 튀니스 출신의 역사가. 이슬람의 여러 왕조에서 요직을 역임했다. 저작으로는『이발서』『세계사 서설』등이 있다.

바야지트 1360∼1403(1360)
69 88 76 상업 외교 등용 기동 연사 B A B E 서아시아 수명:5
소속:
오스만 투르크의 제4대 술탄. 용병, 진군이 아주 신속하여「번개」라는 별명이 있다. 유럽 연합군을 무찔렀으나 티무르에게 패배했다.

바라카트 ????∼1404(1340)
84 63 70 농업 상업 외교 등용 화공 복병 C B B E 중앙아시아 수명:
소속:
티무르 제국의 장군. 정치고문으로 활약하면서, 제국내외의 시책에 대해 크게 영향력을 가졌다.

바르크크 ????∼1398(1340)
69 72 64 건설 등용 화공 복병 B B B C 서아시아 수명:
소속:
맘루크 왕조의 장군. 주군인 앗 사리프를 타도하고 술탄위를 박탈하여 부루사 맘루크 왕조를 창설했다.

파시 1364∼1403(1364)
17 68 52 돌격 공성 복병 A B B D 영국 수명:
소속:
영국의 장군. 대 프랑스전에서 활약했다. 전제 군주 리처드 2세를 몰아내고 헨리 4세를 세웠다. 후에 국왕 헨리 4세에게 반역했으나 전사했다.

피서니 ????∼1380(1324)
56 75 71 등용 기동 화공 복병 B C C S 이탈리아 수명:
소속:
베네치아의 장군. 베네치아 해군 최고사령관을 맡았다. 키옷쟈의 전투에서는 제노바 해군을 격파하였고, 그 싸움에서 입은 상처로 사망했다.

후안 ????∼????(1350)
54 57 62 농업 공성 C C C E 이베리아 수명:
소속:
카스티야 국왕. 엔리케 2세의 아들. 혼인관계를 이용해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며 포르투갈에 침입했으나, 알제발로타의 싸움에서 패했다.

피루즈 ????∼1388(1330)
82 73 66 농업 상업 건설 돌격 A B B E 인도 수명:
소속:
투굴루크 왕조 제3대 술탄. 내정에 힘을 기울여, 세금 감면과 도시 건설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엄격한 이슬람 교도로써 힌두교도를 탄압했다.

페디리코 3세 ????∼????(1332)
64 57 38 농업 돌격 B C C B 이탈리아 수명:
소속:
양 시칠리아 국왕.

후사인 1세 ????∼????(1344)
54 57 55 돌격 B C B E 페르시아 수명:
소속:
이라크의 쟈라일 왕조의 제3대 군주. 아버지 우와이스의 사후, 왕위를 계승했다.

후냐디 1387∼1456(1387)
78 86 84 농업 상업 외교 기동 돌격 화공 A B A E 발칸 수명:
소속:
헝가리의 장군. 국민적 영웅. 귀족간의 대립을 조정하여 혼란을 수습하였다. 오스만 투르크를 베오그라드에서 격파하였고, 투르크군의 유럽 침입을 저지했다.

후로와사르 ????∼????(1338)
67 51 55 상업 문화 외교 공성 C D C E 프랑스 수명:
소속:
프랑스의 역사가. 영국과 밀라노의 궁정을 섬겼다. 중세 최대의 연대기작자라고 칭해졌고, 기사도시대의 양상과 이야기들을 연대기에 남겼다.

부카 1세 ????∼????(1310)
68 65 57 농업 건설 B C C E 인도 수명:
소속:
남인도의 힌두교국 비자야나갈왕국의 제2대 국왕. 이슬람교국인 투굴루크 왕조의 혼란을 틈타, 형 하리하라와 힘을 합쳐 건국했다.

벨투르트 ????∼1384(1341)
51 38 54 건설 문화 화공 D A D E 독일 수명:
소속:
독일의 수도사. 영국의 로져 베이컨과 함께, 유럽에서 화약을 발명하였다. 베네치아의 대포주조에 종사하였다.

페트라르카 1304∼1374(1304)
62 28 57 문화 외교 D E D E 이탈리아 수명:
소속:
이탈리아의 시인. 고대 로마 문화의 이상같은, 고전의 부흥에 힘썼다.『서정시집』『아프리카』같은 저작을 남겼다.

호웬리 ????∼????(1326)
41 70 56 돌격 공성 A C B E 영국 수명:
소속:
영국의 장군. 에드워드 흑태자를 섬겼다. 도끼의 명수로써 푸아티에 전투에서 활약했다.

호쿠드 ????∼1394(1350)
57 84 72 외교 등용 기동 연사 복병 A A A C 영국 수명:
소속:
영국의 용병대장.「하얀 형제단」이라 불린 부대를 이끌고, 피렌체나 밀라노 공국등에서 용감하게 활약하였다.

호콘 6세 1339∼1380(1339)
54 61 67 농업 외교 복병 B C D A 스칸디나비아 수명:
소속:
노르웨이 국왕. 스웨덴 왕을 겸했다. 덴마크 왕녀 마르그레테와 결혼하여, 북구 3국에서의 칼마르 동맹을 성립시켰다.

챤도스 ????∼1370(1325)
35 79 37 기동 돌격 공성 A C A E 영국 수명:
소속:
영국의 장군. 에드워드 흑태자를 모셨다. 푸아티에 전투에서 발군의 전과를 거두어, 적과 아군 양쪽에서 칭찬받았다.

얀 지슈카 1360∼1424(1360)
52 87 74 등용 기동 연사 화공 복병 A A A E 서루시 수명:
소속:
보헤미아의 장군. 후스파의 지도자. 대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신성 로마 황제 지기스문트의 군을 무참히 깨뜨렸다.

쵸서 ????∼1400(1343)
67 48 65 문화 외교 C C C E 영국 수명:
소속:
영국의 시인. 에드워드 3세의 후광으로, 군인, 외교관을 역임했다. 저작『켄터베리 이야기』는 근세 영국 문학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요한네스 5세 1332∼1391(1332)
47 61 53 문화 등용 기동 화공 C C B C 발칸 수명:
소속:
비잔틴 황제. 선제의 신하를 발탁하여, 요한네스 6세의 명을 따라 공동 통치를 하였다. 오스만 투르크의 진출을 저지하였으나, 많은 영토를 잃었다.

라자르 ????∼????(1350)
57 64 46 돌격 B C B E 발칸 수명:
소속:
세르비아 제후. 발칸 제국의 연합군을 인솔하여, 오스만 투르크의 무라트 1세와 싸웠으나 패했다.

무라트 1세 1319∼1389(1319)
83 85 71 농업 건설 등용 기동 돌격 공성 A B A E 서아시아 수명:
소속:
오스만 투르크의 제3대 술탄. 마리시아의 전투에서는 크리스트교 연합군을 격파하여 발칸반도로 판도를 넓혔고, 아드리아노플에 새 도시를 건설했다.

라누스안 ????∼1395(1333)
62 67 54 건설 기동 화공 B B C D 동남아시아 수명:
소속:
아유타야 왕조의 제5대 국왕. 제4대 국왕 톤룬을 쫒아내고 왕위에 즉위했다. 영토 확대에 힘써, 캄보디아의 수도 앙코르돔을 파괴했다.

라요슈 1세 1326∼1382(1326)
72 76 68 농업 상업 기동 돌격 복병 B B A E 발칸 수명:
소속:
헝가리 국왕. 베네치아와 싸워 영토를 넓혔다. 백부 카디미에슈 3세가 죽은 후, 폴란드 왕위를 계승해 헝가리의 영토를 넓혔다.

라마 라쟈 ????∼????(1354)
55 43 57 농업 C C D E 동남아시아 수명:
소속:
아유타야 왕조의 제6대 국왕. 제5대 국왕 라누스안의 아들. 아버지의 사후 왕위를 계승했다.

티무르 샤 ????∼????(1340)
54 57 54 농업 C C B E 몽골 수명:
소속:
차가타이 한국의 군주.

티무르 메리크 ????∼????(1333)
57 51 47 돌격 C C C E 몽골 수명:
소속:
킵차크 한국 군주 울루스의 아들. 토쿠타키야의 동생.

루플레히트 1352∼1410(1352)
53 55 44 농업 C C C E 독일 수명:
소속:
발트 선제후. 후에 신성 로마 황제에 선출되어 대관식을 위해 로마로 향했으나, 반대파들에게 저지당했다. 교회의 세력을 약체화 시키려다 실패했다.

레오폴드 3세 1351∼1386(1351)
45 52 63 상업 돌격 C C B E 독일 수명:
소속:
오스트리아공. 합스부르크가 출신. 이전 영토의 회복을 위해 스위스와 싸웠으나 패해서 죽었다.

볼로마 라쟈 ????∼1388(1320)
54 69 61 농업 외교 돌격 복병 A C C E 동남아시아 수명:
소속:
아유타야 왕조의 제3대 국왕. 스코타이 왕조를 공격하여 복속시켰다. 첸마이에 원정중 진중에서 죽었다.

와트 타일러 ????∼1381(1340)
56 67 43 농업 복병 B B C E 영국 수명:5
소속:
영국의 혁명 활동가. 농민 반란을 지도하여 국왕 리처드 2세에게 농노제 폐지 등을 요구했다. 국왕측에 의해 모살되었다.

비트프트 ????∼????(1354)
62 64 57 농업 건설 기동 복병 B C B D 서루시 수명:
소속:
리투아니아 공국의 대공. 노브고르트등의 러시아의 여러도시들을 공략하여, 세력을 확대했다.

블라디슬라프 1348∼1434(1348)
77 83 80 건설 문화 등용 기동 돌격 공성 A B A E 서루시 수명:
소속:
리투아니아 대공. 폴란드 여왕과 결혼하여 야게로 왕조를 열었다. 탄넨베르크 전투에서는 독일 기사단을 격파하여, 폴란드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왕몽 ????∼1385(1308)
60 22 52 농업 문화 D E E E 화북 수명:
소속:
원말 사대화가의 일인. 세밀한 산수화를 터득하여, 남종화를 크게 발전시켰다. 주원장의 숙청으로 옥사했다.

공민왕 ????∼????(1320)
63 54 51 문화 C C D C 한반도 수명:
소속:
고려의 제31대 국왕. 원의 쇠퇴를 틈타 이성계를 파견하여 북방의 영토를 탈환하였다. 왕비가 죽은 후 정치에 관심을 잃어 국정이 문란해졌다.

호유용 ????∼1380(1325)
77 58 64 농업 상업 건설 C C C E 화북 수명:
소속:
명의 관인. 주원장에게 중용되어 승상에 임명되었으나, 국정에 관한 권한을 독점하였다. 반란을 꾀했기 때문에 처형되었다.

이마가와 사다요 1326∼????(1326)
56 54 58 문화 외교 C C C C 일본 수명:
소속:
무로마치 전기의 무장. 규슈 탐재에 임명되어, 규슈의 남조세력을 평정했다. 후에 규슈 탐재에서 해임되고, 스루가, 도토우미로 좌천되었다.

호소카와 요리유키 1329∼1392(1329)
78 68 66 농업 상업 복병 기동 공성 B B B C 일본 수명:
소속:
무로마치 전기의 무장. 어린시절의 아시카가 요시미츠를 막부 관령으로써 보좌하였다. 명덕의 란을 진압한 공이 커서, 관령 호소카와가의 번영의 기초를 이루었다.

야마나 우지키요 1344∼1391(1344)
53 67 47 돌격 복병 B B B E 일본 수명:
소속:
무로마치 전기의 무장. 아시카가 요시미츠를 따라 남조와 싸워 공을 세웠다. 요시미츠의 조직재편성에 반항하여, 명덕의 난이라 불린 반란을 일으켰으나 패해 죽었다.

시바 요시마사 1350∼1410(1350)
70 65 74 농업 문화 외교 공성 B C C D 일본 수명:
소속:
무로마치 전기의 무장. 호소카와 요리유키를 실각시켜 관령이 되었다.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사후 제4대 장군 요시모츠를 보좌하여 막부 제일의 실력자로 군림했다.

주원장 1328∼1398(1328)
91 72 92 농업 상업 건설 화공 복병 B B B E 화남 수명:2
소속:
명나라 초대 황제. 원조 말기에 일어난 홍건의 난에 참가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10만명 이상의 관료를 숙정하여 황제 독제 체제를 확립했다.

주체 1360∼1424(1360)
83 96 86 농업 건설 문화 외교 기동 돌격 공성 복병 A A S C 화남 수명:
소속:
주원장의 4남. 후의 영락제. 제2대 황제 건문제를 쫒아내고 제위에 즉위했다. 정화에게 남해원정을 시켜 해외에 위세를 떨쳤고, 전성기를 이루었다.

서달 1332∼1385(1332)
67 90 85 농업 등용 기동 돌격 화공 공성 S A A B 화남 수명:
소속:
명의 장군. 건국 공신. 원말의 동란 중에 각지를 전전하면서 주원장의 건국을 도왔다. 원군을 북방으로 쫒아내고 명의 화북지배를 안정시켰다.

제태 ????∼1402(1344)
54 43 47 상업 C D D E 화남 수명:
소속:
명의 관인, 학자. 제2대 황제 건문제의 측근. 정난의 변으로 연왕 주체가 승리하자, 간신으로서 처형되었다.

니나가와 지온 ????∼1448(1388)
68 62 55 문화 외교 B C C E 일본 수명:
소속:
무로마치 중기의 무장, 연가 사범. 니나가와 신우위문이라 칭했다. 막부에서는 정소공역에 임했다. 일휴종순이나 범등에서 연가를 연구해『친담구집』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아시카가 우지미츠 1359∼1398(1359)
52 58 61 상업 C C C E 일본 수명:
소속:
무로마치 전기의 무장. 가마쿠라 공방에서의 동국을 지배했다. 장군직에 야심을 드러냈기 때문에, 막부와 대립했다.

아시카가 요시미츠 1358∼1408(1358)
89 71 87 건설 문화 외교 등용 화공 복병 B B B E 일본 수명:
소속:
무로마치 막부 제3대 장군. 남북조를 통일하여, 명과의 국교를 열어 감합무역을 실시했다. 공가문화를 좋아하여 기타야마 문화의 흥성에 공헌했다.

오우치 요시히로 1356∼1399(1356)
69 74 67 문화 외교 기동 돌격 공성 B B A C 일본 수명:
소속:
무로마치 전기의 무장. 명덕의 난에서는 야마나씨의 청을 물리쳐, 막부군을 승리시켰다. 후에 아시카가 요시미츠와 대립하여, 가마쿠라 공방과 아시카가 요시카네를 유인하여 응염의 난을 일으켰으나 패해 죽었다.

정화 1371∼1434(1371)
84 87 78 상업 외교 기동 돌격 B B B S 화남 수명:
소속:
명의 환관. 영락제를 모시고 정란의 변에서 군공을 세워, 남해원정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해로를 따라 원정을 행하여,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복속시켰다.

도키 요리야스 1318∼1387(1318)
54 50 47 등용 C C C E 일본 수명:
소속:
무로마치 전기의 무장. 미노·오와리의 수호.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아우인 타다요시와 대립하여 다카우지를 도왔다. 후에 무로마치 막부 중신의 일인이 되었다.

쿠수노키 마사노리 ????∼????(1330)
46 72 56 건설 기동 돌격 복병 B B C D 일본 수명:
소속:
무로마치 전기의 무장. 쿠수노키 마사시게의 아들. 남조측의 주력으로써, 북조군과 싸웠다. 관령 호소카와 요리유키의 교섭으로 북조와 화해하게 되었다.

방효유 1357∼1402(1357)
61 45 53 농업 문화 C E D E 화남 수명:
소속:
명의 관인, 학자. 제2대 황제 건문제를 모셨다. 연왕 주체의 거병을 건문제에게 보고했으나, 정난의 변에 패해 주체에게 포로가 되어 처형되었다.

남옥 ????∼1393(1350)
54 71 57 기동 돌격 B B A D 화북 수명:
소속:
명의 장군. 몽골 고원에 원정하여 원군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다. 후에 주원장에게 숙청을 당해 처형되었다.

이성계 1335∼1408(1335)
76 83 72 농업 상업 연사 화공 공성 B A B A 한반도 수명:2
소속:
고려 장수. 조선의 창건자. 왜구를 격퇴하여 공적을 세운 후, 고려를 멸하고 왕이 되었다. 유교를 국교로 삼고 명과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이선잠 1314∼1390(1314)
64 35 57 농업 건설 C D D E 화북 수명:
소속:
명의 관인. 문신으로써 주원장을 섬겨, 내정의 정비에 커다한 공헌을 하였다. 만년엔 모반의 혐의를 받아 자결했다.

이문충 ????∼????(1335)
71 76 66 건설 기동 공성 복병 B B A E 화남 수명:
소속:
명의 장군. 주원장의 생질. 건국의 공신으로 문무 양면에서 뛰어났다. 주원장의 과도한 숙청에 반발하여 진노를 사서 모살되었다.

예(睿)종 ????∼????(1341)
54 52 49 상업 B C D C 화남 수명:
소속:
진조 베트남의 제10대 군주. 형 예(芸)종의 사후 제위를 계승했다.

요광효 1335∼1418(1335)
92 64 99 문화 외교 등용 화공 복병 C D D E 화북 수명:
소속:
명의 승려. 지략이 대단하여, 주체의 군사로써 일했다. 정난의 변에서, 50만의 조정군을 적은 숫자로 격파했다. 후에 주체의 즉위에 진력했다.

최무선 1326∼1395(1326)
64 67 59 건설 문화 화공 C B C B 한반도 수명:
소속:
고려 말기의 군사기술자. 중국에서 화약 제조법을 배워, 화포의 개발에 종사했다. 중화기를 장비한 수군을 조직하여 외구토벌에서 활약했다.

Posted by 롤링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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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이의 징기스칸 세계를 정복하여 후궁을 맞아 자손을 불려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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