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헬기는 엄밀히 말해서 고정익기와 다른 형태의 항공기이다. 조종법도 상당부분 다르고, 헬기는 육군소속이고 고정익기는 공군소속이다. 또한 헬기는 다른 전투기나 지상공격기와는 달리 나름대로의 전술을 가지고 있는데 항공기 전술이라기 보다는 전차 전술에 가깝다. 실제로 현대에서 병력 수송용 헬기는 트럭이나 병력수송 장갑차와 같은 용도로, 그리고 무장헬기는 전차나 정찰용 장갑차량과도 비슷한 용도로 쓰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헬기 시뮬레이션은 비행시뮬레이션으로 취급되고 실제적으로도 전차 매니아보다는 비행시뮬레이션 매니아에게 더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비행시뮬레이션의 계보에서 독자적인 한 축을 형성하고는 있지만 비행시뮬레이션의 진화론에서 헬기시뮬레이션이라는 "신대륙 원주민"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필자는 신대륙으로 건너가 새로운 화석찾기에 고심해야했다. 그러나 비교적 헬기 시뮬레이션의 화석을 찾기는 쉬웠을 뿐만 아니라 그 소프트웨어가 지천에 깔려있었다. 그러나 미리 말씀드리는 바이지만 다른 고전들과 마찬가지로 헬기시뮬레이션의 고전역시 구할 수 있다고 해서 실제로 구해서 해보지는 말 것을 권한다. 전설은 그냥 전설로 남아있을 때가 더 나은 것이다.

 헬기 시뮬레이션의 초기작으로서 1986년작 MPS의 건십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는 후에 건십 2000, 건십 III로 이어지는 계보의 시초가 되었다.


건십 (박스 아트)

 앞에서 초창기 비행시뮬레이션을 논할때 한번 언급했던 EA사의 LHX를 기억할 것이다. 이것을 구해서 플레이해보았을 때 오 과연 명작이로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비록 이말이 지금의 기준을 능가한다는 말은 전혀 아니지만, 당시의 시스템에서 이러한 개념의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돌릴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참신하게 느껴졌다.
 실제의 조종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LHX는 콜렉티브(헬기의 출력조절장치)가 고도를 통제하고 기수의 상하각도가 속도를 좌우하게 된다는 헬기조종의 특징적인 개념중 하나를 그대로 묘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에 더불어 각종 용도의 4종의 미군 헬기를 조종할 수가 있었다. 그래픽은 지금 17인치 모니터로 보면 시력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지만, CGA/EGA 환경에서 나름대로 필요한 점들을 표현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LHX는 지금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당시에도 나름대로 잘나갔던 헬기시뮬레이션이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LHX

 VGA 시절에 들어오면서 필자는 당시 자상하신 아버지의 덕분으로 이상한 헬기 시뮬레이션을 하나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기술수준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이나믹스의 A-10보다 약간 낙후된 정도 수준이었는데, 2개 기종을 몰 수 있고 갓 286이 쓰일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널케이블 연결 및 모뎀플레이 모드가 있었다. 그것도 8곳의 미국지형을 배경으로 네트워크모드만 주로 할수 있고 오프라인으로는 한 대의 드론만을 상대로 무유도 직선탄도 로켓을 쏘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널이나 모뎀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으므로 막막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이것이 분명한 헬기 시뮬레이션이지만 제목이나 사진 기타 다른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으므로 아쉽지만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헬기 시뮬레이션의 결정적인 진화는 MPS의 건십2000이라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VGA 그래픽, 잘 짜여진 임무들, 캠페인 모드, 흥미진진한 조종사 관리 등등 명실상부한 시뮬레이션의 조건들을 모두 찾추었을 뿐만 아니라, 비행모델도 LHX의 그저 흉내내는 것에서 벗어나 조종간과 출력의 반응이 좀더 현실적으로 연산되기 시작했다. 건십 2000은 확장팩이 나올 정도로 성공했고 이후의 헬기 시뮬레이션의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는 점에서 고전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건십 2000이 있으면 그 이전버젼인 건십 1.0(?)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구체적인 자료는 찾을 수가 없고 대략 LHX과 비슷한 정도 수준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이후에 윈도우즈용의 건십 III가 나온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전작만큼의 화려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윈도우즈로 넘어오면서는 건십 시리즈보다 롱보우 시리즈등 새로운 기술력으로 무장한 경쟁제품들이 헬기 시뮬레이션계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다.


건십 2000과 박스 아트

 건십2000에 그래픽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한 헬기 시뮬레이션이 바로 노바로직의 코만치이다. 코만치는 복셀스페이스 기법이라는 독특한 그래픽 시스템을 차용하여 폴리곤 그래픽을 손가락질 해대었다. 이당시 복셀스페이스 기법은 매우 참신한 시도요 기술적인 발상전환이라고 받아들여졌는데, 요인즉슨 지형을 예로들면 당시의 폴리곤 그래픽이 큼지막한 삼각뿔을 놓고 "저것이 산이니 산일줄 알아라" 라고 하는 데 비해서 복셀스페이스 기법은 마치 모자이크 그림과도 같이 지형을 작은 점들로 조각조각 내서 그 작은 조각들로 지형을 이룬 것이다. 때문에 지형에서 직선의 연결이 아닌 부드러운 곡선처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즉 현재 노바로직의 델타포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주름진 지형이 묘사되었다. 다만 당시의 지형은 그 각각의 점들이 델타포스보다 더 컸고 때문에 멀리서 보면 부드럽지만 저공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래픽이 깨져보였다. 지형은 그래도 좀 괜찮지만 전차나 헬기등의 오브젝트들은 그래픽 깨짐이 더 심했다. 그런 이유인지 델타포스에서는 지형은 코만치식의 기법을 사용하고 오브젝트들은 3D로 표현되어있다. 이런 단점 때문에 폴리곤의 묘사가 더 디테일해지고 텍스쳐 맵핑기법이 도입되면서 복셀스페이스 기법은 노바로직만의 전유물이 되었고 보편화 되지는 못했다. 여하튼 당시로서는 복셀스페이스 기법이 부드럽고 주름진 지형을 표현하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었고 지형의 아기자기함은 헬기 시뮬레이션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그래픽의 기술적 특성은 코만치의 특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포인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매뉴얼에서는 코만치 헬기가 원래 조종하기 쉽다고 변명을 해놓긴 했지만 노바로직사의 전통적인 방침에 부합되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조작이 매니아들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일례로 헬기에서 출력조절과 스틱의 앞뒤조작은 두 개가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데 노바로직 코만치는 그점을 무시하고 출력은 전적으로 고도만, 그리고 스틱의 앞 뒤 움직임은 속도만 조작하게 극단순화 시켰던 것이다. 아마도 코만치가 노바로직에 대한 매니아들의 손가락질이 시작된 최초제품이 아닌가 싶다. 다만 진행 자체의 재미는 나름대로 있었다. 여하튼 매니아들의 손가락질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노바로직은 동일 엔진을 사용한 형제제품인 소련군의 헬기를 소재로한 워울프를 만들었는데 이 두 형제는 하나의 CD에 담겨 워울프대 코만치라는 이름으로도 출시되었다.     

 헬기 시뮬레이션이 고정익기 시뮬레이션에 비해 그다지 많이 출시되는 것이 아니라서, 헬기 시뮬레이션은 새로운 성공작이 나올 때마다 그 기술력의 변천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제인스 롱보우는 헬기 시뮬레이션에서도 더 이상 상자곽들의 전쟁이 아닐 뿐만 아니라 지금 기준으로는 다소 거칠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뛰어난 퀄리티의 그래픽을 제공했다. 이것 뿐이랴. 제인연감으로 유명한 제인스사가 시뮬레이션계의 거장중 하나인 EA와 손잡으면서 만들어내기 시작한 데이터의 충실성을 포함한 리얼리티는 가히 엽기적이라 할만한 것이 되어있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DI사에서도 아팟치 헬기를 소재로 한 시뮬레이션을 출시했으나 그에 돌아온 평가는 "제인스 Longbow의 유사품 주의" 딱지가 고작이었다. 국내에 출시될 때 모 출판사에서 판매하였고 아팟치 헬기 모형 장난감을 끼워팔았던 충격적(?)인 마케팅 덕분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DI사의 시뮬레이션 역시 모 게임 평가에서는 오히려 제인스 롱보우보다 더 좋은 평가가 나왔다는 점이다. 그래픽상으로는 DI 아팟치가 깔끔하지만 조금 단순해보이는데, 아무래도 과열경쟁에 따른 피해인 듯 하다. 제인스 롱보우를 위협한 것은 DI사의 아팟치만이 아니었는데 노바로직이 코만치로 재미좀 봤던지 코만치 2를 비슷한 시기에 내놓았다. 코만치 2에서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복셀스페이스 기법이 아닌 전통적인 텍스쳐 그래픽으로 제작되었다. 이역시 조종하기는 쉬웠다.   


코만치 3

 고정익기 시뮬레이션은 1차대전 이래의 각종 전투용, 민항용 항공기들이 소재가 되기 때문에 같은 기종이 중복해서 만들어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그러나 헬기의 경우는 고정익기보다 역사도 짧고 기종도 상대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 성공할 만한큼 유명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기종은 걸프전에서 이름을 날린 AH-64 아팟치 하나로 대부분이 집중되고 있다. 여러 기종을 몰 수 있는 헬기 시뮬레이션이라 할지라도 실제는 아팟치 위주의 임무로 구성되고 다른 헬기들은 일종의 끼워팔기 수준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아팟치가 아닌 헬기를 선택해서 비행하는 게이머는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과열경쟁 상태에서 좋은 평을 받으며 상업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과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제작사들이 계속해서 아팟치를 소재로 한 시뮬레이션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하긴 UH-1같은 구닥다리 수송용 헬기를 시뮬레이션 한다면 누가 그걸 사겠는가. 롱보우의 성공에 힘입어 제인스는 롱보우 II를 내놓았다. 롱보우 II는 전작의 후광을 얻은 셈으로 보이고 획기적인 기술적 발전보다는 그래픽의 향상이 두드러진다.


제인스 롱보우


제인스 롱보우 2

최근에는 mindscape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에서 팀 아팟치라는 제품을 만들었고 또 razorworks라는 팀에서 아팟치 하복이라는 박진감 넘치는 녀석을 만들었다. 사실 헬기는 원래가 제한된 기동과 전술을 펼치기 때문에 비행모델등에 어떠한 획기적인 진보가 있기는 힘들다. 반면 저공 근접거리에서 대부분의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디테일한 그래픽의 퀄리티여부가 비중있는 완성도의 판단기준 중 하나가 된다. 사실 다 엇비슷한 기종과 전술하에서라면 그래픽이나 유저인터페이스등이 흥행여부를 좌우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데, 그 점은 주관성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과열경쟁하에서 흥행이 가능할까 걱정도 되지만 하드코어라 할지라도 어차피 제한된 기동만을 하기 때문에 조작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고 하늘 저위에서 점을 공격하고 그것도 폭격의 경우에는 폭탄 터지는것도 제대로 구경해보지 못하는 고정익 항공기에 비해서 헬기가 보다 박진감 넘치는 전장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장형성이 가능한게 아닌가 싶다.


팀 아파치


Razorworks의 아파치-하복


Posted by 롤링다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