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자들이 남긴 유서

ETC 2012. 10. 25. 11:38

자살자들이 남긴 유서


형사정책연구원의 박형민 전문연구원은

최근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학위 논문 ‘자살행위의 성찰성과 소통지향성’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1994년에서 2004년까지 자살자가 남긴 유서 405건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박 박사의 논문내용 중 부모가 자살직전에 남긴 유서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래 내용은 박형민 박사의 논문을 그대로 인용했으며, 해설은 부분적으로 재 정리해 놓았음을 알립니다.


자살 직전에 자식에게 남긴 부모의 유서,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습니다.
'부모'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30대 자살자]

 

○○아 ○○야 정말 미안하다. 아빠가 이럴 수 밖에 없는 걸 너희들은 알아주고 아빠가 죽더라도 너희 옆에 항상 너희 하고 있는거야.
[2-01-006, 35세, 남, 오락실 종업원, 2001년 3월10일 추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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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딸의 생일에 자살한 사건이다. 유서에는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으나 수사기록에 따르면 딸의 생일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비관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의 부인은 1999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그후 자녀들은 큰집과 작은 집에 각각 1명씩 맡기고, 자신은 오락실 종업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자살자가 목숨을 끊은 날은 자신과 딸의 생일이었다.

 


○○와 ○○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엄마가 이렇게 죽게 된것에 대해 용서해다오. 엄마는 더 이상 이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없단다. 죽을 결심이면 왜 못살겠냐고 하지만 엄마에게서 만큼은 그렇지 않았단다.

할머님께도 마지막으로 용서를 빌고 떠날려고 했지만 그게 안되었다. 다 나하나 죽으므로써 모든거 용서되고 끝날것이라 생각된다. 어차피 사람은 한 번나서 죽는거 엄마는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났다 생각하고 부디 좌절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열심히 살길 바란다.
당신에게 잘해주지 못하고 떠나게 돼서 미안해요. 엄마에게 용서받지 못하고 떠나게 돼서 정말 미안해요. 모두들 나 한사람에게 잘해주었는데 받지 못하고 주지 못하고 떠나는 나를 용서하세요.
[2-98-002, 36세, 여자, 주부, 1998년 2월1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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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심하게 다툰 후 가족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했다. 자신이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용서되고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유서에서 밝히고 있다.

 

■[40대 자살자]


웨 살고 싶은 마음이 없겠나. 너희들 웃는 모습 보고식내지만 웃지 못하는 너희 아빠 힘들게 살았건마 결과가 죽음뿐이구. 사랑하는 내 마누라 내 자식들 어찌 살아갈꼬. 살고 싶다면 그치만 아빠만 힘들어다. ○○아 아빠 이렇게 죽어야 하냐. ○○엄마 사랑했어. 살고싶어라.
[3-99-028, 48세, 남 수산업, 1999년 9월7일 음독사]

 

아빠 때문에 너에게 어떠한 불이익이 닥치드래도 남자답게 격파하고 나가라. 너무 놀라지 말고 침착 하길바래. 이렇게 간다고 너무 소문나면 동하 동진이 장래에도 지장 많을 듯 하니 조용조용 처리해 주길바래. [1-98-003, 41세, 남, 무직, 1998년 12월1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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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자살 때문에 형제나 자녀들이 겪을 수도 있는 불이익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염려하고 있음을 밝혔다.

 


너희들한테 엄마로써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참고 애를 썼는데 마음데로 안데는구나.
[3-04-039, 44세, 여자, 의상실종업원, 2004년 1월24일 음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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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열심히 살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한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 : 019 3○○ ○○○8 400만원, 안○○ : 016 7○○ ○○○7 490만원, 진○○ : 016 7○○ ○○○7, ○○○7 240만원, 김○○ : 011 9○○○ ○○○2 200만원, ○○이가 연락이 않대면 엄○○에게 전화하여라. 최○○ : 011 4○○ ○○○8 150만원, 엄○○, 나, 양○○ 총 2600만원, 엄○○ : 1000만원, 나 : 1000만원, 양○○ :

600만원, 12월까지 인수중지 하였다. 계산하여서 달라고 하여라.
은행*에서 **** *** 내가 말고 내가 없다면 집을 이사 가거라.

사망신고를 빨리 하라는 말이다.

○○ 엄마에게 크나큰 짐을 남기고 가는구나. 미안하다. 앞면에 돈은 혼자서 않될 수도 있을태니 매형하고 상의하여라.

○○아 엄마는 불쌍한 사람이다. 첫 엄마말 잘들어라. ○○이도 공무잘하고 열심 살아라.이아빤느 멀리서 너희 자매를 볼수있다. ○○이 엄마 미안하지만 재혼하여서 살기을 바란다. 너혼자살기가 힘들거라는것은 내가 더 잘 안다.
전화번호 변경하여라.
[1-03-030, 46세, 남, 개인택시기사, 2002년 12월7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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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해 자신이 겪고 있는 경제적인 문제상황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에게 죽음은 모든 것의 포기가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것은 그가 받을 수 있는 돈의 목록을 작성하여 유족들이 그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 나아가 자신이 죽은 이후 가족들이 ‘이사’ ‘전화번호 변경’ 등의 방법을 통해 부채가 되도록 전가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랑스런 내 새끼들. 못난 아버지를 잊고 항상 당당하게 바르게 살며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다오. 너희들은 사랑하는 단어는 세상에 없는 것 같구나. 그래서 허기를 느끼고 갈증을 느낀다.

엄마도... 사랑하는 나의 가정 나의 가족 용서해다오. 오늘도 마음속에 와달로 어둠속의 수많은 길들을 걷는다. 가도가도 끝이없는 수없이 많은 길들. 낮은 무섭고 밤은 더욱 무섭다. 내가 없어 당신이 행복할 수 있다면.

[2-04-059, 44세, 남자, 식당, 2004년 7월19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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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지내는 자기 자식과 처에 대한 생각에 평소에 잠을 못 잤다고 하며, 자살자 형의 진술에 따르면 다시 결합하고 싶은 데 부인이 잘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를 용서해다오. 내몸이 안조아 이길을 택해다.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다오.

[3-02-014, 48세, 남자, 무직, 2002년 3월24일, 와사]

 


불쌍한 아이들 ○○아동원에 넣어 주세요. 부탁합니다. 우리 아이들(○○,○○) 제발 학교에 다니게 해 주세요. ○○아동원에서 자라게 해 주세요. 내가 살아있으면 다 같이 죽습니다. 꼭 아이들을 부탁합니다. 밥벅고 학교 다니게 해 주세요.

[3-05-042, 42세, 여자, 모래채취선 운영, 2004년 8월25일 추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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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인부가 산업재해로 사망하였는데 합의가 되지 않아 아이들을 아동원에 미리 입적한 후 자살한 사례다.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무능했던 아빠 왜이리 힘들어 해야 했던지 너희들은 몰은다. ○○이는 더욱더 노력해야해. 장남인 아빠가 잘못되였으니 너희 힘이 무거울거야.
우리집에게 모든 장손에 자식* *임이기 때문에? ○○아 아빠에 모습이 이렇게 되었구나. 아빠 부담스러게 생각말고 화장시키렴.
영원히 잊어지도록 미안하게 되어버린 너의 아빠. 자식이 아빠를 무시하는 너. 무시하게끔 생활했던 너희 아빠가 잘못이지 뭐 있어겠는가.
[3-99-028, 48세, 남자, 수산업, 1999년 9월10일 음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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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 대한 원망의 심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는 자녀의 그러한 행동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림으로써 그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사업 실패로 인하여 여러 친척들에게 빚을 지고 힘들어 했던 자신의 상황을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아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표현하면서, 평소에 자신을 무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잘못을 돌리고 있다.

 

 


■[50대 자살자]

 

○○야 이못난 아빠를 용서하여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한 줄 아니. 이아빠는 앞으로 너에게 짐만돼깃 때문에 이세상을 먼저간다. 떠난다. 많은 형제간들에게 참으로 부끄럽고 무어라고 말할수 없는 심려를 끼치는 구나. 이 아버지는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에 앉은것같다. 오래살면 무엇하겠느야.

[1-99-022, 52세, 남자, 무직, 1999년 2월11일 음독사]

 

 

 

■[60대 자살자]


이대로 오래 살아서 자식들한테 큰 짐이나 되어 죽는 날까지 고생할까 생각하니 무섭고 숨이 막힌다. 살기가 너무 고통스러워 오랜 생각 중에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결심을 하고 방도 내놓았다.
이런 내 마음을 백번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그동안 너희들이 잘 보살펴 준 것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너이들에게 힘든 일만 부탁하여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업구나. 온 가정에 건강과 행복하길 바란다. 엄마가 하루속히 열락하여 잔금받고 살림살이 치워 주기바란다. 계약금이백은 통장에, 잔금 천 사백이다.

[1-04-016, 60세, 여자, 무직, 2004년 10월23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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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마티스 관절염과 고혈압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그녀는 유서에서 계속해서 고통받으며 ‘자식들에게 큰 짐’이 되며 죄인같이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죽음 이전에 자신의 주변을 정리한 후 유족들에게 뒷일을 부탁하며 목숨을 끊은 것이다.

 


○○ ○이 ○○보아라. 내가 이 방법 택해서 마음에 준비를 하는데 2년 세월이 걸렸다. … ○○아 바쁜 너한테 시간을 뺏지 않으려고 몇일 미루어 볼까 했는데 지난 토요일부터 오늘로 정해든 것이니 엄마가 교회 가는 시간이기 때문 부디들 잘 살어. 꼭 이라 할 말이 더 있는데 시간이 없구나.

[2-04-021, 61세, 남, 무직, 2004년 6월9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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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에서 2년 동안 자신의 죽음에 대해 고민해왔음을 밝히고 있다. 그의 유서에는 자녀와 배우자의 일정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시간을 선택하여 자살을 시도했음이 나타난다.

그가 선택한 가장 적절한 시간은 배우자가 교회에 가서 집에 가족이 아무도 없는 때였으며, 유서에 더 많은 말을 남기고 싶었지만 가족이 돌아올 시간이 촉박해 오자 ‘시간이 없다’며 죽음을 서둘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폐결핵 환자로 목수일을 하다가 약 7년 전부터 병세 악화로 더 이상 치료약이 없다는 의사들의 진단을 받은 후 약 3년 전부터 해마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목숨을 연명해 왔으며, 유서의 다른 부분에는 요양원에 가는 것보다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은 판단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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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담배 커피도 마실 줄 모리고 하루 장기 윳 바독 노래도 할 줄 모리는 친구도 업는 나로서는 이 길박기 택할 수가 업섯소. 나으 운명이오. 나으 죽음은 나으 선택이온이 어느 누구도 관여하지 마새요.

나으 자손들애개 막겨 주새고 나으 유언대로만하면 댐이다.

조용한 노인당에서 죽을랴고 하엿슨나 노인당에서 죽고나면 존경하는 동직원이나 불상한 노인당 같이 인이 다치가바 자식 집이 가서 죽사온이 어느 누구도 문책하지 마새요. 이것은 나으 운명 선택임이다.

[3-99-001, 73세, 남, 무직, 1998년 11월26일, 의사]


○○야 보아라. 어렵게 사는 너희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여 엄마는 늘 마읍속으로 조인같은 심정으로 알아왔단다. 엄마는 지난 몇 개월동안 아픈몸을 겨우끌고 이병원 저병원으로 치료를 해바도 별 차도가 없구나.
요 사이 통증이 심해서 잠도 잘 수 없이 아푸구나. 앞으로는 이사도 내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것 갓다. 이대로 오래 살아서 자식들한테 큰짐이나 되어 죽는날까지 고생할까 생각하니 무섭고 숨이 막힌다.
[1-04-016, 60세, 여자, 무직, 2004년 10월23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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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마티스 관절염과 고혈압으로 고통받고 있다가 계속해서 고통받으며 ‘자식들에게 짐’이 되며 죄인같이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못난 이 예비가 당뇨 중품 절입선 모든 질병의로 언어부자 경의로 말도 제대로하지못하고 좌측 손발이 제때 움직이지 못하고 그래서 병원한번 가지 못하고 약도 제대로 꺽지못해서 더 이상 살기가 힘드는 구나.

그례서 이길을 선택하오이 부디 이예비를 용서해다오.

○○엄마 그동안 고생 마낫고 이몸은 더 이상 살수가 없어서 이길을 선택햇쓰며 당신이 생명마*도록 건강하게 잇다오도록 바라네.

이몸이 죽으라고 병원에 가지말고 그양 장예식을 치려라.
이 몸은 더 이상 살기가 힘드는구나.

[2-04-013, 66세, 남, 무직, 2004년 2월19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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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와 중풍으로 고생하면서 약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야 보아라. ○○야 힘든세상 살아가기에 얼마나고생이야. 어렵게 사는 너희들보면서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여 엄마는 늘 마읍속으로 조인같은 심정으로 살아왔단다.

엄마는 지난 몇 개월동안 아픈 몸을 겨우 끌고 이 병원 저병원으로 치료를 해바도 별 차도가 업구나. 요 사이 통증이 심해서 잠도 잘 수 없이 아푸구나. 앞으로는 이사도 내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갓다.
이대로 오래 살아서 자식들한테 큰짐이나 되어 죽는날까지 고생할까 생각하니 무섭고 숨이 막힌다. 살기가 너무 고통스러워 오랜 생각 중에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결심을 하고 방도 내놓았다.

이런 내 마음을 백번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그 동안 너희들이 잘 보살펴 준 것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1-04-016, 60세, 여자, 무직, 2004년 10월23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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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마티스 관절염과 고혈압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자신이 신체적 고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른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가족들의 큰 짐을 덜어주기 위해 목숨을 끊은 선택을 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 뿐 아니라 남아있는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서도 걱정을 표현하면서, 아무리 치료를해도 나아지지 않고 생활을 꾸려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살아서 자식들의 짐이 되는 것 보다 죽음을 선택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결정이 ‘오랜 생각 중에’ 심사숙고해서 결심한 방법이기에 가족들은 자신의 선택을이해해 달라고 부탁한다.

 

 


○○, ○○야 未安 (미안) 하다. 아버지 노릇한번 제대로 못 하고 아버지 人生 (인생) 은 白紙 (백지) 였다. 아무 미련도 집착도 없고 가져 갈 것도 너희에게 줄 것도 없이 떠난다.

너희 엄마는 불쌍한 사람이니 잘 좀 보살펴 주라. 너희 兄弟 (형제) 간에 사이 좋게 지내고 和睦 (화목) 한 가정이 이루어지면 하는 일, 계획하는 일이 잘된다. 시신은 약속대로 한대 병원에 기증하고 시험이 끝나면 火葬 (화장) 해라.


[2-01-040, 60세, 남자, 부동산중개업, 2001년 10월14일 의사]

 

 

 

사랑은 우리에들. 전부가 다 미안하구나. 이길밖에 채택할수박에 없든것은 앞으로 만구풍선이 좋것은 뻔하다. 망하면 나 혼* 온집안 식가 당할수는 없구


[2-04-064, 66세, 남자, 무직, 2004년 10월19일 추락사]

 

허나 나는 척추가 나를 미치게 한다. 우울하게도 슬프게도, 때론 절망감으로 나를 괴롭힌다. 삶의 무게도 힘겨운 우리 가족 내가 짐이 될 것이 더욱 슬프고 괴로워서 많이 고민해 보지만 나는 버틸 힘이 없다.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어 작별을 고하니 용서해다오. 많이 미안하다. 우리가족이 내게 베푼 큰 사랑 고이 안고 가련다. 고맙다. 아버지와 부디 이 악몽 씻어 버리고 잘 살기를 기원하며 사랑하는 내 남편 고맙습니다.


[1-05-034, 67세, 여자, 무직, 2005년 12월22일 익사]

 

 

 

 

 

 

 

■[70대 자살자]

 


2000.4.29 생을 마감하려고 결시한지 오래다. 마음이 착잡하기 한이 없다. 부모님께 불효막심하였고 내가 모자라는 점이 많았고 부덕한 탓으로 자식교육을 잘못시켰다. 장례비는 통장에 8백만원이 있으니 대전국립묘지로 보내다오.


[2-06-010, 74세, 남, 무직, 2006us 4월29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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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천식과 중풍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는 유서에서 ‘모자르고 부덕했다’고 자신의 삶을 평가하고 있었으며, ‘생을 마감할려고 결심한지 오래다’며 죽음을 오래 전부터 고민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자살하기 전 자신의 장례비를 통장에 준비해 두었다.

 

 

 

 


사랑하는 딸 아들 여동생 죄송하다. 참지 못하여 오늘로 세상 끈넌다. 미안하다. 아버지 죽으면 화장하야 납골로 시골 엄마산소 옆에 묻어다오. 원인은 비자카드 이자문제 내가 몸이 불편하다.

[2-03-039, 74세, 남자, 인쇄업, 2003년 10월3일 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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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업을 운영하면서 발생한 금전적 어려움을 혼자 해결하고자 애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 그의 가족들은 그가 겪은 경제적인 어려움에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내가 오래살야 욕심을내면 온 자식들은 가족이 다 우울증애 걸일 것 강타서 내가 미리간다.
원통해하지마라.

이것은 나으 운명 나으 선택임이다.

불치병애 걸여 백약이 무효요 남보기는 아무치도 안한나.
나는 안젓슬 수도 업고 누어잇슬 수도 업고 안절부절 홍설수설 굴신굴신 전댈 수가업고 몸이 무진 약해지고 날씨는 무진추와 저서 도라당이수도 업서 더 사라밧자 아무 희망도 바램업사와 나으운명 나으 선택 이온이 가득이나 쪼달이는 자식들 경제적인 부담시키지 말고 병원 영안실가지 말고.

[3-99-001, 73세, 남자, 무직, 1998년 11월26일 의사]

 

 


내 나이 금년 76세. 이 두 늘근 노부모 갈 곳 업서 자식한테 마져 죽어 자살을 결심하오니 이 애비만 업서지면 모든 일을 간편하겠다. 명심하다. 뒷돌아보면 다음에 큰 후해 할거시다. 명심하라. “추서” 자식한테 칼 마저죽느니 차리리 나 자신이 자결함이 오를거시니라생각~~~~

○○란 사람(자살자 아들 이름)이 도시까스선을 절단하여 아파트를 폭발할려고 하니 즉시 채포조사할 것을 고발함니다. ○○ 애비 즉고인 벽

[3-97-003, 75세, 남자, 무직, 1997년 1월19일 의사]

 

 


■[80대 자살자]

 

 

 


아범 가슴의다 손을 언고 생각을 해바. 나 한태 어태켜 해스면 그러캐 섭섭해슬가. 고리장 가슴그러개 보기가 서러서 내손으로 고리장 해야지. 화해서 업시고 물도 놋치마러(화장해서 버리고 제사에 물도 놓지 말라는 뜻?) 아범잘생각 나안태 어터캐 핸넌가 생각해 바. ○○아 이할미넌 너만 바라고 살여고 핸는대 너도변해지는구나. 더 살수가 업서 결심일 햇서. 너의 압바 잘 닷처 잘 살기려 바라면서 더난다.
[2-04-057, 87세, 여자, 무직, 2004년 9월22일 추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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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섭섭하게 대한 자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표현되어 있다. 그녀는 자녀가 너무 섭섭하게 해서 자신의 손으로 고려장하는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화장해서 없애버리고 제사에 물도 놓지 말라는 의미의 말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고 있었다.


<출처 - SBS 그것이알고싶다 (나는 살고싶다) 외, 블로그 和而不同l
< target=_blank>http://tong.nate.com/kimbki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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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는 , 두건의 자살...


10월8일 광주에선 두 건의 자살사건이 나란히 발생했다.
한 사건은 두 자녀를 기르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20대 주부가 애절한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것이고,

또 다른 사건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다섯 살배기 딸을 그리워하던 30대 가장이 “딸이 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진 것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두 사건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다름 아닌 ‘사랑하는 자녀로 인한 죽음’이라는 점이다. 물론 한 사람은 죽은 자녀를 따라갔고 또 다른 사람은 사랑하는 자녀를 버리고 떠났다는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공통분모는 두 사건을 하나의 끈으로 이어준다.


경찰에 따르면 주부 이씨는 사업에 실패한 남편과 이혼한 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인 두 자녀와 함께, 친척이 운영하는 식당 일을 도우며 식당 건물 2층의 원룸에서 살아왔다.

이씨는 서울에 사는 어머니에게 “생활비가 떨어지고 벌이도 시원찮아 살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누구보다 자녀를 사랑한 주부였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도 자녀의 옷을 세탁하고 간식을 챙기고 자녀의 책가방을 챙기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씨가 남긴 일기장에서 발견된, 자녀에게 보낸 유서에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심정이 고스란히 나타나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먼저 가서 미안해.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는데도 사주지 못해 미안해.”

수사를 맡은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평소 자녀들을 마음껏 먹이고 입히지 못하는 데 대해 죄책감을 많이 느꼈고, 그런 처지를 오랫동안 비관해온 것 같다.

자녀를 두고 자살한 사건이다 보니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최진실 씨가 생각나더라. 수사를 하면서 화가 날 정도로 답답했다”고 말했다.

 


“먼저 간 딸이 보고 싶다”며 세상을 등진 30대 가장은 딸이 교통사고로 숨진 뒤 괴로움을 견디지 못했다.

그 충격으로 불면증에 시달렸고 식음을 전폐했으며 우울증이 심했다.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는 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빠의 마음, 죽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한 것은 죽은 딸의 물건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 것이었다고 가족들은 전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1만2174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0만명당 24명이니 가히 세계적 수준이다.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하루 평균 34명이 빈곤과 신병비관 등을 이유로 자살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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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Posted by 롤링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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